제5계명은 자녀들에게만 일방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계명이 아니다. 성경은 이 계명이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대해서도 요구하는 바가 있는 교훈이라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엡 6:1-4에서 제5계명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우선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음을 명시한 다음, 부모에게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 것을 말하고 오직 주의 훈계와 교훈으로 양육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일깨워주었다.(본문 중)

김진흥(시드니신학대학 교수, 교회사)

배꼽만큼 우리를 존재론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없다. 바로 이것이 제5계명에서 가르치려는 바다. 십계명은 인간이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면서, 생명이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기저귀를 누군가 갈아 주는 것, 이는 은혜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표지이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우리 주님께서는 십계명을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대별하여 그 본의를 가르치셨다. 또한 사도는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 4:20)고 말씀하여 오른쪽 돌판에 새겨진 계명들이 단순히 인간 사회의 인륜 관계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음을 일깨워주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이의 이런 깊은 관련성을 잘 드러내 준다. 개혁교회의 요리문답들이 가르치듯이 제5계명은 하나님이 우리 위에 두신 권위들에 대한 합당한 태도를 가르친다. 우선 우리의 부모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들을 깨닫고 그에 합당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나의 나 된 것은 부모님의 희생적인 사랑 덕분’이라는 깨우침에서 시작하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만드시고 섭리하셔서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은혜를 바라보게 한다. 이처럼, 앞의 네 계명과 뒤의 다섯 계명을 연결하는 자리에 위치한 제5계명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합당한 태도와 ‘우리 위에 계신 그분’에 대한 사랑을 연결시켜 준다.

 

ⓒPixabay.

 

종교개혁자 루터는 대요리문답에서 바로 이런 제5계명의 독특한 위치와 의의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아 계신 부모를 주셔서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게 하셨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과 모든 천사들이 더없이 기뻐하며, 모든 악마들이 혼비백산한다.” 제5계명을 잘 지키는 것은 단순히 인간 사회의 인륜 관계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천사 그리고 악마들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루터는 왜 ‘네 부모를 공경할 때’ 악마들은 혼비백산하고, 하나님과 천사들은 더 없이 기뻐한다고 해설할까? 사탄은, 그리고 악마들은 마땅히 존경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고 반역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사람들 역시 자기들처럼 반역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땅 위에서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이 악한 마귀들의 소원은 좌절된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 위에 있는 권위를 부정하고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갈 때, 마귀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며 기뻐 날뛰게 될 것이다. 제5계명은 이처럼 중요한 위치와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셈과 야벳의 ‘공경’을 크게 축복하셨고 함의 ‘멸시’를 엄하게 저주하셔서 십계명이 주어지기 오래전에 이미 이 계명의 높은 뜻을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신 후에 그 뜻을 구체적으로 풀어가시면서, 사형으로 다스려야 할 엄중한 죄악들 안에 부모에 대한 패륜 행위를 두 차례나 언급하셨다(출 21:12-17). 그뿐 아니라,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서, 그 계명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축복을 내려주셔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더욱 기쁨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다.

 

영화 “장수상회(2014)” 스틸컷.

 

제5계명은 자녀들에게만 일방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계명이 아니다. 성경은 이 계명이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대해서도 요구하는 바가 있는 교훈이라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엡 6:1-4에서 제5계명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우선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음을 명시한 다음, 부모에게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 것을 말하고 오직 주의 훈계와 교훈으로 양육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은 제5계명의 범위를 모든 인륜 관계까지 넓혀 적용한다. ‘아랫사람들에 대한 윗사람들의 의무’(대요리문답 129문답) 역시 제5계명이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바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허락하신 독특한 권위에 따르는 책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가장 폭넓은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과업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업이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엡 6:4)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특별히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그들의 권력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맡기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그 부모의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권력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앤드류 큐벤호벤).

신자의 자녀들이 스스로 성 삼위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 입술로 시인할(“주님, 저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때까지 그리스도인 부모는 말씀과 기도로써 그들을 향한 예언자 노릇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참된 효도를 하게 하고 거룩한 덕을 가르치고 거룩한 계명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다. 자녀가 공부만 잘하면 무엇이든지 허락하는 부모의 태도는 영적으로 대단히 어리석고도 위험한 태도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우상숭배를 자녀에게 노골적으로 가르치는 불신앙의 태도이다. 그런 자녀들은 ‘신자’인 부모가 무엇을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지 몸으로 체득하게 마련이다. 부모의 태도를 통하여 그 자녀들은 ‘저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지만 이 세상을 위해서는 바알(풍요의 신)이 더 중요하다‘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는 제5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항상 깊이 묵상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한다.

어쩌면 부모의 평생이 걸리는 이 중요한 과업을 위하여,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모든 자녀들에게 주신 것이다. 이 일에 낙심하지 않도록, 신실한 부모에게 아주 유익한 충고를 다시 마음에 새겨 보자. “자녀에게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라. 그러나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네 자녀에 관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시간을 가져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전통적인 유교 윤리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인간의 가르침은 제 아무리 고상하다 하더라도 이런 세월의 변화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내려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명은 결코 쇠락하지 않는다. 땅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순종하기를 거듭 기도하는 신실한 자들이 그 계명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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