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독특성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독특한 실체적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을 자신과의 인격적 교제 안으로 부르셨다는 데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자리가 인간의 영혼(정신)이다.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과 세상(이웃)과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의 자기초월적 개방성, 즉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정의될 수 있다.(본문 중)

윤철호(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인간은 정신과 육체가 불가분의 관계 속에 상호작용하는 전일적 존재이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로부터 창발하며 육체에 의해 매우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정신은 단지 육체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고 오히려 육체를 통제하고 의도된 목적을 위해 육체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정신적 또는 영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의 본유적인 특징은 인간이 관계적 존재라는 사실에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 안에서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독특성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독특한 실체적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을 자신과의 인격적 교제 안으로 부르셨다는 데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자리가 인간의 영혼(정신)이다.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과 세상(이웃)과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의 자기초월적 개방성, 즉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하나님 형상은 완전한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종국적으로 완성되어야 할 운명으로 주어졌다. 세 위격의 페리코레시스 즉 공감적 사랑 안에서 친교적 연합을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의 하나님 형상의 궁극적 운명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하나님의 은혜는 대립적이거나 배타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망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운명을 향한 인간의 성향은 인간의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 본성 안에 내재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주어진 이 자연적 본성은 인간의 죄에 의해 심대하게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파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계시신학과 인간의 피조적 본성에 기초한 자연신학은 반드시 서로 배타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둘이 서로 배타적이 되는 것은 전자가 인간의 자연적 본성 안에 본래적으로 내재해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개방성을 무시하거나 후자가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키는 죄의 파괴적 힘을 간과할 때다. 계시는 온전한 기독교 자연신학을 가능케 한다. 특히 오늘의 과학 시대에 신학은 자연과학과 열린 대화를 통해 범우주적 차원의 기독교 자연신학의 전망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하나님의 형상은 종말론적 미래에 성취될 운명으로서 현재는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죄를 동시에 지닐 수밖에 없는 모순적 존재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칭의)은 즉각적으로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육신 즉 옛사람의 힘이 작용한다. 자기중심적 폐쇄성으로서의 죄, 즉 불신앙과 미움과 절망은 이생에서의 우리의 삶 속에서는 완전히 극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수시로 넘어지고 실패를 거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계시된 무한하신 사랑과 지혜 안에서 우리를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향해 인도해 가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이 종국적으로 완성되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 안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고찰을 맺으면서, 오늘날의 인간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기도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에 의한 유토피아의 실현을 약속하는 테크노피아의 신화가 미신처럼 확산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의 가속적 발전을 통해 호모사피엔스로서의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는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악의 실체를 다시금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진화의 역사 속에서 유례없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른 생물들을 멸종시키고 살아남아 번성한 종이다. 우리 인간은 오늘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생명체를 파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가 개발·비축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축된 엄청난 수의 핵탄두가 국가 지도자의 순간적인 오판 때문에 언제라도 전 지구를 재앙에 빠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한다.[1] 아우슈비츠의 교훈을 잊는다면 우리는 다시금 돌이킬 수 없는 전 지구적인 묵시적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때에는 아무것도 되돌리거나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unsplash.

 

이와 같은 시대에 우리 인간에겐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우리 안에 있는 이중적 모호성 또는 죄성에 대한 인식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리고 이 유한성과 이중적 모호성 또는 죄성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 세계의 모든 생명을 회복하고 살리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Kyrie eleison)!”


[1]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8년 초 현재 세계 핵 보유 9개국이 비축하고 있는 전 세계 핵탄두 숫자는 1만 4,465기라고 동년 6월 18일 밝혔다. 9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인도 및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이다. http://www.sisaweekly.com/sub_read.html?uid=2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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