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서치센터의 조사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단지 하나의 질문이었을 뿐인데, 그것은 우리 삶의 현실과 우리의 생각, 그리고 가치관까지 모두 드러냈다. 성실하게 일해서 월급 따박따박 받고, 아끼고 아껴서 저축하고 목돈을 모아 자기 집을 사고, 가족들과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시나리오는 이제 아주 먼 이야기가 되었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윤실 공동대표)

 

퓨리서치센터에서 세계 선진국 17개의 국민들에게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물었다. 전체적으로는 1위가 가족이었는데, 3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2위로는 직업이 25%, 3위로는 물질적 풍요가 19%였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의 답변은 1위가 물질적 풍요였고, 2위가 건강, 그리고 3위가 가족이었다.

 

이 조사는 보기를 주고 고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응답자가 답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복수의 답을 말했는데, 유독 한국인들은 62%가 한 가지 답만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물질적 풍요 답변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조금 과대평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물질적 풍요, 즉, 돈이 최고라는 이 생각이 1위라는 것도 놀랍지만, 다른 선진국들 중에는 이런 결과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 더 놀랍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이 결과가 보여주는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가족이 순위에서 뒤로 밀려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가족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왔다. 특히,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더 강할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돈보다도, 심지어 자신의 건강보다도 뒤로 처져 있다. 가족의 가치가 돈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의아함이 조금은 풀릴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풀리고, 반대로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어렵게 된다는 생각이 가능한 것이다. 즉, 가족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지만, 그 가족을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이 있어야 가족을 이룰 수 있고, 돈이 있어야 가족을 유지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돈이 있어야 건강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심지어 생존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살아야 할 이유조차 대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인들의 삶의 의미는 돈이고, 돈이 모든 것의 답이고, 모든 것의 해결책이다.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안중에 없고, 무엇을 희생하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는다. 즉, 돈이 목적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는 2위에 오른 ‘직업’은 한국인들의 조사에서는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즉, 돈을 어떻게 버는지도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여긴다. 마치 대학 수험생에게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 삶의 모든 문제는 바로 이 돈으로부터 시작된다. 돈이 만들어 내는 욕망, 경쟁, 불안, 헛됨, 실패 등등이 모두 이 사회의 문제이다.

 

 

얼마 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주제로 영국의 한 매체가 마련한 토론에 참여했다. 줌을 이용하여 각국의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나라라고 돈이 안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라마 하나가 다 담았다. 드라마에서 게임의 상금 456억 원이 눈앞에 제시되는 순간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졌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그들은 게임을 포기하고 각자의 세계로 돌아갔지만, 그들은 다시 그 죽음의 철창으로 모였다. 그들이 돌아갔던 세계는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모든 가능성이 막혀 있는 죽음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자진해서’ 그 게임장으로 모였다. 적어도 그 게임장에서는 한 번의 기회는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진행될 때 사회자가 내게 물었다. ‘한국에서는 도박(gambling)이 성행합니까?’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도박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456억 원을 한 명, 모든 게임을 이긴 한 명이 다 가진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도박이다. 나는 그게 그저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 사회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도박이 성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모두 도박이다. 자영업자가 사업을 시작하면 1년 이내에 50%가 망하고, 3년이 지나면 80%가 망한다. 우리는 모두 목숨을 걸고 도박 같은 인생을 산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는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단지 하나의 질문이었을 뿐인데, 그것은 우리 삶의 현실과 우리의 생각, 그리고 가치관까지 모두 드러냈다. 성실하게 일해서 월급 따박따박 받고, 아끼고 아껴서 저축하고 목돈을 모아 자기 집을 사고, 가족들과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시나리오는 이제 아주 먼 이야기가 되었다. 한국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부동산과 주식, 코인과 펀드 등으로 세상이 도박판이 되고, 청년들조차 ‘영끌’로 만든 작은 자본으로 도박판에 뛰어든다. 결국, 대박이 났다는 전설은 있으나 주변에서는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없고 쪽박만 보이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한국인들에게 돈 없는 절망만 남았다.

 

이 사회가 살려면 돈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 가치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면 가치를 변화시키는 그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그건 종교가 할 일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뒤르켐은 그의 명저 『자살론』에서 ‘자제(自制)를 가르치는 최선의 학교는 종교’라고 했다. 인간의 근본적 죄성(罪性) 중 하나인 탐욕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즉, 자제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종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를 보면, 종교는 자제를 가르치는 최선의 학교가 아니라, 욕망을 가르치는 최선의 학교였다. 믿음으로 포장된 우리의 욕망은 기도 가운데 극대화되었고, 간증 가운데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욕망이 믿음 가운데 절제되는 것이 아니라 더 증폭되기만 했다. 그리고 결국 믿음으로 부자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되기 위해 믿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이 시대 교회가 할 일은 너무나 명확하다. 대안 가치를 제시하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신앙이 부자 되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용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이 혼자 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가 함께 간다고 격려하며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비록 이번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서 ‘영성, 신앙, 종교’가 삶에 의미를 준다고 대답한 한국인은 1%밖에 안 되지만, 우리는 적은 누룩이 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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