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는 학생과 학부모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고,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 제도를 만들어 내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어 있다. 새 정부가 이 과제를 회피하면, 문제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교육 문제를 해결한 교육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본문 중)
김영식(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새로운 정부의 새로움이 설렘과 기대를 불러와야 하지만, 교육과 관련된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 공히 우리 교육의 핵심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 공약은 양적 질적 측면 모두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수 위원회 구성 내용은 또 한 번 실망과 우려를 하게 했다. 교육 영역은 과학기술교육분과 일부로 포함되었고, 3명의 인수 위원은 국회 교육 위원회 경험조차 없는 국회의원 1명과 과학계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되어, 산적한 교육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새 정부의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는 학생과 학부모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고,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 제도를 만들어 내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어 있다. 새 정부가 이 과제를 회피하면, 문제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면, 교육 문제를 해결한 교육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새 정부의 대통령이 교육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의 교육 공약 중 두 가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유·초·중·고 교육 정책에 한해 새 정부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핵심 과제 두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공약 1: 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 확대를 통한 공정한 대입 제도 실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제시했던 초·중·고 관련 공약 중 필자는 학교 현장에 크게 영향을 미칠 내용으로서 공정한 대입 제도와 AI 교육 혁명 공약에 주목한다. 안타깝게도 학교 현장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공약이 수능 정시 비중 확대 공약이다. 공정한 입시 제도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그러나 수능 중심의 정시 비율 확대는 결코 공정성을 높일 수 없고 오히려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이미 수능 정시 비율이 확대되어 2022학년도 대입에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은 40%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정시 합격자가 많은 상위 10곳 중 5곳이 강남·서초 지역 고교로 나타났고, 재수생이나 삼수생 등 졸업생의 합격 비중이 더 늘어났다(2022. 4. 13. 내일신문). 개천에서 용 나는 입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정시 비율을 확대했지만, 지방 학교, 일반고의 입시, 그리고 재학생의 입시를 더욱 어렵게 만듦으로써 불공정, 불평등을 확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시 비중 확대는 목표한 공정성 확대는 달성하기 어려운 반면, 그 부작용은 심각하다.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만 남는 참담한 모습들이 교실 안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음에 인용한 세종시 한 고등학교 교사의 페이스북 글은 그 부작용을 신랄하게 보여 주고 있다.
수업을 하다가 작은 활동을 하나 주고 학생들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한 학생이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태블릿으로 다른 과목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고 있었다. 태블릿을 넣으라고 하자 불만스러워한다. 수능에서 이 과목이 필요 없고 다른 과목 공부가 급해서 그런 건데, 왜 열심히 하려는 학생을 ‘쥐 잡듯이 잡느냐’고 한다. 수업 시간에 인강 듣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수업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고 하니, 그런 것은 아니라며 눈물을 왈칵 쏟는다. 눈에는 분노가 차 있다. 이 학생은 그날 이후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
금요일에 한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힘이 다 빠져서 교무실에 들어왔다. 꽤 많은 학생들이 발표 수행 평가에 응시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정시라서 내신이 필요 없다며….
이는 한 교실만의 특별한 장면이 아니다. 정시 비율을 40%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전국의 다수 교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자신의 진로를 위해 인강을 듣는 학생에게 뭐라 말할 것이며, 교실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에게 제대로 수업 듣기를 지시하는 교사는 또 무슨 잘못인가? 왜곡된 입시제도 속에서 학생도, 교사도 고통받고 있다.
수능 중심의 정시는 학습자 주도성, 사고력, 문제 해결력을 강조하는 미래 교육 방향과도 배치된다. 이는 미래 교육으로 가는 열차를 출발시켜야 하는 시점에, 미래로 가는 철길을 끊고 오히려 과거로 가게 만드는 일이다. 미래 교육과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는, 수능의 유형을 바꾸고 입시 경쟁을 완화하지 않는 한,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구호일 뿐이다.
우선 입시 경쟁 체제를 해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의도로 도입한 여러 교육 제도도 입시 경쟁으로 모두 왜곡·변질되었다. 입시 중심의 대학 서열 구조를 완화해서 교육 중심의 대학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도 필요하고, 출신 학교로 차별하는 채용 영역의 관행을 끊어 내는 정책도 추진되어야 입시 경쟁을 완화 또는 해소할 수 있다. 성인 학습자 전형 비율을 확대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가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탈피해서, 고등학교 시기와 졸업 후 충분한 자기 탐색과 사회 경험을 가진 후에 대학에 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입시경쟁을 완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약 2: AI 교육 혁명 공약
윤 대통령의 교육 공약에서 미래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공약이 AI 교육 혁명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강화하고, 초중등 교육에서 AI 교육을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AI 과목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우선, AI 과목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면, AI 관련 지식에 대한 문제 풀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AI 교육을 망가트리게 될 것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만점 맞았다고 운전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 AI 시험에서 만점 받았다 해서 AI 전문 인력이 될 수는 없다.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앱 개발을 위해 코딩 기술은 필수 언어처럼 활용되기 때문에, 코딩 언어를 모르면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수단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코딩 언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격차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코딩 기술을 가르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코딩 교육에서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적 사고방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0과 1 두 가지로 표현되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실생활의 문제를 알고리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이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력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코딩 교육 활성화가 주요 정책 목표라고 한다면, 사고력 발달을 촉진하는 수업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과제 1: 학교 안에 개별 학생의 특성에 맞는 교육 지원 구조 만들기
비록 공약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래 교육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개별화 교육의 확대다. 특히, 기초 학력이나 정서 행동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보다 많은 학생들의 발달과 성장을 지원하는 학교 교육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가령, 기초 학력이 뒤처지는 학생들 중 상당수는 난독이나 경계선 지능과 같은 학습 장애를 갖고 있다. 이런 학생들은 꼭 특수교육 대상자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특별한 교육적 지원이 많아지면 지금보다 많은 학업 성취를 경험할 수 있다. 반면에 방치되면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하며 학습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핀란드의 경우, 모든 학교에서 특별 지원 교사를 여러 명 배치해서, 학습 지원이 필요한 누구라도 언제든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있다.
과제 2: 학생 수 감소에 대한 적극적 대책 마련
이 역시 윤 당선자의 공약에서 제외되었지만 중요한 과제다. 학생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출생률이 1.0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폐교 사태가 농어촌 지역에서부터 나타난 지 이미 오래다. 지역 사회에서 학교의 폐교는 곧 마을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대책을 새 정부 비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한다.
학생 수 감소 현실을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기회로 삼으려는 지도자의 비전이 중요하다. 개별 학생에 대한 지원을 위해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줄이고 전담 교사나 전문 교사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예산 문제로 포기했던 일이지만, 학생 수 감소 상황에서는 현재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
교육 대통령을 기다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겪고 있는 고통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지금 우리의 문제이자 나라의 미래와 직결되는 일이다. 또한, 교육 문제 해결을 후순위로 미뤄서도 안 된다. 이미 늦었다. 이전 정부가 교육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바람에 개혁의 적기를 이미 놓쳤다.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정착하고 성과를 보기 위해서는 보통 10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지금 시작해도 결과는 2030년대에 가서야 나타날 수 있다. 그나마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2030년에도 우리는 지금과 똑같은 교육 문제를 안고 있게 된다. 교육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고 그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근본부터 개혁을 시도한다면, 윤 대통령은 교육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육 현장과 소통하길 바란다. 선거에서 제시한 교육 공약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오래도록 교육을 고민해 온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할지 다시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서 제안했던 변화들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실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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