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한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노동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우리는 OECD는커녕 전 세계 ILO 회원국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29개 협약만을 비준하고 있고, 최근 2021년까지는 비준을 권고하는 8개의 핵심 협약 중 4개만 비준하여 ILO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가, 2021년이 되어서야 ‘강제 노동 금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을 겨우 비준하였다. (본문 중)

송기훈(목사, 영등포산업선교회)

 

2022년 초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직에 도전했던 강경화 전(前) 외교부 장관이 56표 중 2표를 받고 낙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수장으로 언론이나 방송에서 전문가의 좋은 이미지를 얻었던 터라 그의 탈락 소식은 다소 의아하게 들리기도 했다. 강경화 전 장관의 도전은 노동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 때문에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평을 받지만, 이번 탈락의 원인은 단순히 개인의 경력 부족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ILO는 세계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생활 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UN 산하의 전문 기관이다. 현재 187개의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으며, ILO 총회는 세계 최대의 국제회의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에서 ILO 사무총장을 배출한다는 것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에 이어 국제적 외교의 큰 성과가 될 수도 있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번 낙선으로 대한민국 외교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실제로 한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노동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우리는 OECD는커녕 전 세계 ILO 회원국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29개 협약만을 비준하고 있고, 최근 2021년까지는 비준을 권고하는 8개의 핵심 협약 중 4개만 비준하여 ILO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가, 2021년이 되어서야 ‘강제 노동 금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을 겨우 비준하였다.1) 이처럼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 기준을 고려하면, 국제 외교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기엔 아직 우리 현실이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에 공개된 외교 문서에서는,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과 전교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 탄압을 했던 실상이 국제 사회에서 쟁점화될 것을 우려해 ILO 가입을 보류했던 것이 드러났으며, 1991년 ILO 가입 이후로도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총회 참가 이전에는 한 번도 대통령이 총회에 참석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국제 노동 이슈에 지속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왔다.2)

 

 

또한, ILO 핵심 협약을 체결했음에도 우리의 노동 상황은 국제 기준에서의 단결권, 단체 협상권 보장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파견, 용역 등 간접 고용 노동자에 대해 노동 3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교사 공무원의 노동 3권, 필수 공익 사업장의 필수 유지 업무 제도로 인한 해당 노조의 단체 교섭권과 단체 행동권이 제한되어 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 3권 중 하나인 파업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그로 인한 업무 방해죄 적용과 손해 배상 판결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노조 지도자가 구금되거나 단체 협약시 각종 간섭을 받게 된다. 또한,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때문에 복수 노조가 있을 경우 민주 노조의 교섭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학창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우리나라가 조선업에서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읽으며 뿌듯해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1위는 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 위에 세워진 허울뿐인 금자탑이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얼마 전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이 보도되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돌입한 파업을 보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노동조합의 떼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 이전 시기인 2014년부터 이전보다 삭감된 임금 수준으로 고강도 노동을 계속해 온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공권력 투입이라는 협박의 메시지뿐이었다. 7월 22일, 하청 지회는 사측과 합의를 마쳤지만, 4% 정도의 임금 회복을 약속받았을 뿐 손해 배상 등의 문제를 남겨둔 채 파업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한 혐오 여론이 생겨났던 점이다. 7월 8일자 매일노동뉴스의 기사는 카카오톡 익명 단체 대화방인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에 올라온 글의 일부를 소개해 주었다. 하청 노동자 파업에 반대하기 위해 개설된 이 카톡방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을 바퀴벌레 취급하며 ‘하퀴벌레’로 부르는 글을 볼 수 있었다. 필수적이고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쓰고 버리는’ 식의 노동 구조가 지속된다면, 어느 업장에서든지 이러한 갈등은 또다시 발생하게 될 것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이러한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기보다는 밥그릇 지키기 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대에는 한 업장, 한 지역의 노동 운동이 모든 노동자에게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노동 현실 개선이 시급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차별이나 고용 불안 해소를 모든 노동자의 문제로 인식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해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 논리와 개인의 이해관계를 더 앞세우는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 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갈등이 생기고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 간의 싸움을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ILO 사무총장직에 도전하려던 나라에서 오늘 벌어지고 있는 단결권과 파업권 문제의 슬픈 현실이다.

 

BTS, 봉준호, <기생충>, <미나리> 등, K-문화와 한류의 열풍을 힘입어 K-외교까지도 세계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전 세계의 문화와 산업을 휩쓰는 한국인들의 역량은 실로 놀랍다. 하지만, 이 모든 훌륭한 성취들이 K-현실, K-노동의 아픔 위에 세워져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고개가 숙여진다. 몇몇 스타들이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다면, ‘ILO K-사무총장 강경화’라는 명예만 얻을 수 있다면, 사회 교과서 귀퉁이에 여전히 ‘조선업 세계 1위’라는 말을 기록할 수만 있다면,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합법적인 권리에 대한 무시를 외면해도 괜찮은 것일까?3)

 

이것이 한국의 노동 현실이고 인간의 현실임을 직시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만을 말할 수 있을까? K-시민들에게 던져진 이 질문에 K-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1) 8개 중 마지막 남은 ‘정치적 견해 표명, 파업 참가 등에 대한 강제 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은 형벌 체계와 분단 국가 상황 때문에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2) 한국에 진출했던 프랑스계 유통 업체 까르푸에서 2003년에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화로 제작되고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 <송곳>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외국계 운영진이 회사를 인수하자 노동자들은 외국계 기업이니까 노동자에게 유리한 정책들과 제도들이 따라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프랑스인 경영자에 의해 벌어진 노동자 탄압과 해고를 보며, 누군가 ‘외국계 기업인데 왜 이러냐’ 질문했는데, ‘한국에서는 이래도 되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3)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의 제정 이후 어떻게 하면 법 적용을 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업의 노무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법망을 피해 가짜 5인 이하 미만 사업장을 만들기도 하는 등 K-노동 현실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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