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를 열심히 사용했고, 그럴수록 사망이나 폐 질환 등 중증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들은 건강상의 피해뿐만 아니라 병원비로 인한 경제적 곤란, 자녀의 죽음으로 인한 이혼 등 가정 해체, 장기간 입원 치료로 인한 실직과 사회생활 단절 등 무수히 많은 부차적 피해를 겪었다. (본문 중)
김영환(환경보건시민센터 연구위원)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서 43개 종류 약 1천만 개가 팔린 생활용품이다. 많은 기업들이 가습기 물통에 가습기 살균제를 넣으면 항균이 되며, 인체에 안전하다고 광고하며 제품을 팔았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는 해외에서 농약으로 분류된 독성 물질이었고, 특히 흡입하는 용도로는 절대 판매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가습기 살균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판매되었다. 2023년 8월 현재 환경부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7,854명이고 그중 사망자는 1,821명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가 거의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 기업으로부터 피해 배상을 받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며, 심지어 SK, 애경산업 등 일부 기업은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대형 로펌을 동원해 피해자와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2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지금도 기업 본사 앞에서, 거리에서, 병원에서, 법정에서 탄원을 이어가며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는 긴급 기자 회견을 열고 국민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봄철마다 어린이와 임산부를 중심으로 원인 미상의 폐 질환으로 죽는 환자들이 속출했는데, 정부가 역학 조사를 해보니 가습기 살균제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역학적으로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임이 확실하며, 가습기 살균제가 정확히 어떠한 작용으로 사람을 죽게 하는지는 정부 산하 기관에서 동물 실험을 진행 중인 상태였다.
그런데 2011년 정부의 발표를 살펴보면 매우 이상한 점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역학 조사의 근거법인 「제품안전기본법」은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땐 국가가 ‘제품의 수거’를 권고 또는 명령하도록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확인하고도 제품을 수거하기는커녕 제품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채 국민이 알아서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자제하라고만 했다. 나중에 진상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역학 조사 과정에서 관련 대기업들이 문제가 된 제품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정부에 수 차례 요구했었고, 정부는 위험의 증거가 충분함에도 기업과 소통하며 ‘사용 자제’ 권고라는 법령에 없는 발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수거 명령은 3달 뒤인 2011년 11월 11일에 시행되었는데 3달 동안 가습기 살균제가 마트에서 계속 팔렸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닌 기업 편에 섰다.
원인도 모르고 숨을 쉬지 못한 채 죽어가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의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아이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한 제품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독극물이었다니,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숫자가 많은 만큼 그들의 피해 상황도 매우 다양했다. 대체로 영유아, 임산부, 노인, 기저질환자 등 독성에 예민한 사람일수록 가습기 살균제를 열심히 사용했고, 그럴수록 사망이나 폐 질환 등 중증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들은 건강상의 피해뿐만 아니라 병원비로 인한 경제적 곤란, 자녀의 죽음으로 인한 이혼 등 가정 해체, 장기간 입원 치료로 인한 실직과 사회생활 단절 등 무수히 많은 부차적 피해를 겪었다. 2020년 한 연구에선 설문에 응답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49.4%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정신적 피해도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이후 피해자들은 기업을 고발하는 한편 정부에 피해자를 위한 적극적인 구제 대책을 세워달라고 꾸준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항상 수동적이었고 2016년 검찰이 대대적으로 대기업 사장들을 구속 수사하며 전 국민적인 관련 기업 불매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공식 사과를 할 때도, 정부는 사과 직후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을 통해 ‘사과가 법적 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대응이 계속 소극적인 이유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기업과 소비자 간의 문제로 축소해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이윤을 위해 안전성 검사 없이 독극물을 만들어 판매한 기업에 있고,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왜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이런 대참사가 발생했을까? 기업이 아무 검증 없이 독극물을 만들어 가정에 판매하도록 허락한 정부의 방관 때문이다. 옥시RB, 헨켈 등 영국과 독일의 글로벌 기업도 오직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다. 가습기 살균제는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선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국가기술표준원 산하에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공산품의 안전을 사전에 점검하는 ‘생활제품안전과’, 제품 결함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제품안전조사과’를 설치하고 수십 명의 공무원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국가기술표준원은 해당 제품을 몰랐으며, 소관이 아니었다는 변명만 계속하고 있다.
올해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2년이 되는 해다. 이미 해결되었어야 할 참사는 아직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고, 민사 재판과 합의는 멈춰 있으며, 국가의 책임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혼란과 지연은 처음부터 국가의 책임을 빼놓은 데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이며 책임자가 있다. 정부는 책임자 숨기기를 그만하고 피해자를 위한 배상과 기업과 피해자 간의 적극적인 중재 등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한 번 주저할 때마다 8천여 명의 피해자들은 고통의 시간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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