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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고 1년여가 흐른 후, 집 밖으로 나서기도 어려웠던 유가족 엄마들은 얼떨결에 연극 수업을 받게 된다. 이렇게 모인 엄마들은 김태현 연출가의 지도 아래에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게 된다. 연극 <장기자랑>은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본문 중)

 

최주리(청년활동가)

 

누군가는 이들을 보면 눈물을 왈칵 쏟는다. 누군가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자리를 뜬다. 누군가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냐며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누군가는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놀라며 수군댄다.

 

“자식을 잃고도 밥이 넘어가나?”

 

세월호 유가족인 박정화(조은정 양 어머니) 씨는 식당에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1) 누구나 먹는 세끼의 밥이 이제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저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평범한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남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피해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편견 아래에 또 다른 상처를 입었다. 곪아버린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입히는 명백한 2차 가해다. 2차 가해는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과 관련해 2차적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피해를 입어도 마땅하다’고 단정 짓거나, 피해자가 범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거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이다.2) 그러나 피해자다워야 할 피해자는 없다. 그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크고 작은 상처를 짊어지고 아파하고 있는 우리 이웃이다.

 

영화 <장기자랑>(2023) | 감독 이소현 | 93분

 

엄마들이 대신 이루는 아이들의 꿈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하고 1년여가 흐른 후, 집 밖으로 나서기도 어려웠던 유가족 엄마들은 얼떨결에 연극 수업을 받게 된다. 이렇게 모인 엄마들은 김태현 연출가의 지도 아래에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게 된다. 연극 <장기자랑>은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연극은 모두가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연극을 준비하며 엄마들은 아이들의 취미와 꿈을 다시금 떠올리고 이를 무대에서 연기하며 아이들 대신 이루어 낸다. 예술치료의 개념으로 시작했던 연극은 아이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무대가 된다. 이들은 2015년에 첫 공연을 올린 후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3년간 2개의 작품으로 전국에서 200여 회의 공연을 했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서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지워가고 있지만 어쩌면 살아온 생존 학생 아이들 같은 경우는 어제의 일이고 자기의 일이라고 남들한테 말은 못하지만 오늘이 4월 16일인 것처럼 사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장애진 양 엄마 김순덕 배우)

 

극단에는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 6명(정동수 군 엄마 김도현, 곽수인 군 엄마 김명임, 정예진 양 엄마 박유신, 이영만 군 엄마 이미경, 최윤민 양 엄마 박혜영, 권순범 군 엄마 최지영)과 생존자의 엄마 1명(장애진 양 엄마 김순덕)이 활동하고 있다. 극단의 배우들 중에서는 학교에서 공연하다가 ‘왜 우리 아이는 여기 아이들처럼 클 수 없었을까’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세월호 생존자의 엄마와 함께 활동하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의 배우들은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연극을 하며 서로 응원하고 연대할 수 있음에 서로 고마워하곤 한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눈물을 짜내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는다. 또한 연극을 통해 배우와 연출진들이 똘똘 뭉쳐서 상처를 극복하고 연극을 완벽하고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는 뻔한 성공 스토리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현실은 마냥 영화 같은 일들로 이루어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분량과 역할의 차이로 질투하거나 오해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고 미워하면서도 다시 화해하거나 애증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예 떠나버리기도 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늘 일어나는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들 중에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웃다 울며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물론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수 있겠지. ‘엄마가 애 보내고 나서 뭐가 그렇게 좋아가지구 저렇게 하면서 살 수 있지?’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이영만 군 엄마 이미경 배우)

 

몇 년 전, 세월호 참사와 같이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던 이태원 참사의 시민 분향소로 봉사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세월호 유가족 엄마 한 분을 만나 함께 봉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던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맞는지 몰라 우물쭈물하며 긴장했다. 그는 진작 이런 사회적 참사에 연대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며 앞으로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이런저런 봉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세월호 아이들을 이야기할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아이들의 이름과 세월호를 계속 기억해달라고 짧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 외에는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고 연대하는 여느 봉사자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나의 망설임이 혹여나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들을 멀고 어려운 존재로 생각하면서 그들이 언제나 슬퍼하고 민감한 상태라 다가가면 안 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마땅한 예의를 다하고 배려하되 그들이 가진 상처를 잘못 건드리지 않도록 해야 하겠지만 그러한 조심성은 다른 누구를 만나더라도 필요한 것일 것이다.

 

상대의 감정과 상처에 공감하되 편견이나 틀에 갇히지 않고 그 자체를 바라보는 모습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이 곁을 지켰던 사람들은 존경받고 많이 배우고 성경 지식이 많은 이들이 아닌, 상처받고 보호받지 못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원통함을 듣고 마땅한 관심이 닿지 않는 곳을 주목하며 늘 계급이나 이념의 편견 없이 각 사람들의 필요를 보았던 예수님의 시선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

 

세월호 사건을 둘러싸고 많은 것이 밝혀지고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의 배후에 대한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의혹과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퍼지기도 하고, 또 다른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울고 웃을 뿐만 아니라, 화내고 친절하고 실수하고 용기 내고 질투하고 연대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자, 생때같은 자식과 가족을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서 잃었거나 잃을 뻔하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은 이들이기도 하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는다.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자식의 죽음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또 다른 참사가 이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피해자와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럼에도 매일의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다시 맘 편히 웃을 수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잊지 않겠다고 결심한 약속을 다시금 새기는 마음으로 이들을 기억하고 만나겠다고 다짐한다.

 


1) 김혜원, “피해자 두 번 울리는 ‘2차 가해’의 잔인함”, 「중앙일보」, 2018. 11. 16.

2) 조광희,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 「경향신문」, 2020.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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