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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지역 간 연계를 통한 효과가 이론적으로 검증되고, 경험적으로 사례가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자치 단체, 즉, 일반지방자치단체(시, 도, 구청: 이하 ‘지자체’)와 교육지방자치단체(교육청) 수준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고등 교육 투자와 협력은 그 규모와 체계 면에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은 시기별로 경제 발전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거나,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변화로 이어지는 정치적 맥락과 연결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본문 중)
지방 대학의 현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1)
신하영(세명대 교양대학 교수, 교육학)
난리가 난 글로컬 대학-대체 뭐길래?
2023년 4월, 정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 추진 계획 발표 이후 지역 소재 대학들은 혼란 속에서도 과열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한 해에 200억 원씩 5년 동안 총 1,000억 원의 예산이 그야말로 ‘전폭적으로’ 지원되는 이 사업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역 사립 대학 입장에서는 선정되기만 하면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지역 사립 대학들은 대학 간 통폐합과 과감한 학내 구조 조정을 대폭 감수해서라도 입학생 충원율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글로컬 대학 사업은 사업의 규모와, 발표와, 선정 방식에서 파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글로컬 대학 사업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은 그간의 대학과 지역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정책의 변화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선,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의 설계 및 추진의 변화는 전국적인 메가트렌드(mega-trends)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지역의 행정 조직, 즉 지방 자치 단체와 지역 소재 대학에 인구 감소, 고령화, 출산율 저하, 학령 인구 감소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뒤따라 지역의 경기 침체와 일자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가속화된 수도권 비대화는 결국 현재의 지역 소멸 위기론 부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지역 위기를 타개하는 데 있어서 대학은 중요한 지역 내 자원으로 평가받아 왔다. 대학은 지역 내 산업 발전을 위한 지식과 기술이 창발되는 연구 개발 기관이자, 지역 내 인력을 양성하는 인재 양성기관, 학생과 교직원을 비롯해 지역 내 정주 인구와 경제 활동 인구를 확보하는 주요한 인구 유입처로 기능할 수 있다. 고등 교육 연구자들은 그럼에도, 지역 내 대학의 기능이 다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이 가지는 전통적 기능, 즉, 교육과 연구, 사회봉사의 기능은 유지될 것을 강조한 바 있다.2)
지방대학은 정말 ‘지방의’ 대학인가?
대학과 지역 간 연계를 통한 효과가 이론적으로 검증되고, 경험적으로 사례가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자치 단체, 즉, 일반지방자치단체(시, 도, 구청: 이하 ‘지자체’)와 교육지방자치단체(교육청) 수준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고등 교육 투자와 협력은 그 규모와 체계 면에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은 시기별로 경제 발전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거나,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의 변화로 이어지는 정치적 맥락과 연결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먼저, 해방 직후인 1945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고등 교육 정책은 진흥과 양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시기는 고등 교육 양적 확대에 중점을 두고 대학교 정원을 확대했다. 이 시기에 다수의 대학이 신설되었으며, 늘어나는 고등 교육의 수요에 대응하고 동시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대학과 통신 대학이 개설되기도 했다. 이렇게 양적 확대, 즉 공급 확보에 초점을 맞춘 교육 정책의 기조는 비단 고등교육 정책에 그치지 않았다. 초중등 교육 분야에서도 역시 베이비붐 세대가 등장하고 절대적인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교사를 늘리고 교원을 양성하고 수급하는 등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책적 기조였다.
이후 1960-1970년대부터는 우리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이 ‘정부가 대학을 진흥한다’를 벗어나 대(對) 대학 정책이 시작되었다. 즉, 대학이 제공하는 고등 교육의 질과 대학 내 포함된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이루어졌다. 이때,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을 통해 국가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의 기조와 함께 대학의 확충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양적 확대와 함께 대학 교육 과정의 교과목을 개편하고, 연구 시설을 확충하는 등 고등 교육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고자 교육부와 학술진흥원(현 한국연구재단) 등이 국가 수준에서 노력하였다.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대학의 교수진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산업화 이후 지식 기술 사회로의 진입이 이루어진 1980-90년대 고등 교육 정책은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대학 내 민주적 의사 결정을 보강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정부의 재정 지원은 국립대를 제외한 사립 대학을 대상으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에는 특수 목적 대학과 전문 대학이 설립되고, 사립 대학 설립 준칙주의가 적용됨에 따라 사립 대학의 수가 절대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를 통해 고등 교육 수요자 입장에서는 고등 교육 선택권이 크게 확대되었고, 우리 정부는 늘어난 고등 교육 기관, 특히 사립 대학에 대한 관리와 지원의 요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큰 사회 경제적 변화를 겪었고, 우리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 2000년을 기점으로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고등 교육 국제화를 꾀했고. 국비 유학생과 정부 초청 장학생 등의 인적 교류를 포함해서 다양한 국제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경제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늘어나는 청년 실업률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 교육의 실용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들어서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가 가속화되었고, 특히 학령 인구의 감소가 과거의 중장기 예측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다수의 대학들이 신입생 충원에 난항을 겪게 되었고, 정부의 대(對) 대학 고등 교육 정책은 이제는 구조 조정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2023년을 기준으로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의 주요 기제로는 적정 규모화, 그리고 구조 조정을 위해 필요한 유연한 학사 제도와 교육 과정 개편이 작용하고 있다([그림 1] 참조).
[그림1] 우리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 변화
지방과 지방대학이 함께 상생하려면
종합해 보자면, 우리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은 초기 국가 주도의 고등 교육 기관 양적 확대로부터 시작하여, 진흥→질적 관리→자율성 확대→구조 조정으로 변화해 왔다. 결과적으로 과거 중앙 정부의 고등 교육 정책으로서 추진되던 지방 대학에 대한 심의, 관리, 지원은 이제 지방 정부(지자체)와의 상생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글로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여러 지자체에서는 광역시도 차원에서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의 경제와 사회, 교육 발전에 기여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및 실질적 정책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 대학의 소재지, 대학을 둘러싼 경제 공동체(학생과 교직원이 이용하는 점포의 소상공인, 지역 버스와 택시, 원룸촌과 하숙집 등)가 존재하는 시, 군, 구의 기초 자치 단체 수준에서는 변화가 미미하다.
지방 소멸의 위기에 대학이 대안이 되고, 지방 대학 발전을 위한 실질적 지원책으로 이어지려면, 지방 자치 단체의 역할 재조정과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 지자체뿐 아니다. 지방 대학도 지금까지 중앙 정부, 더 정확히는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원)으로 대표되던 중앙의 자금과 제도에만 매달리던 과거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방 자치 시대, 지역 소멸 시대라는 변화된 환경을 마주하면, 지방 대학의 현실이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 이 글은 학술지 「교육정치학연구」에 게재된 “지역연계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나타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쟁점”(2023. 12. 31.)을 일부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인용 시 다음과 같은 출처 표기를 원합니다. 신하영, 박소영. (2023). 지역연계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나타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쟁점. 교육정치학연구, 30(4), 457-483.
2) Uyarra, E. (2010). “Conceptualizing the regional roles of universities, implications and contradictions.” European Planning Studies, 18(8), 1227-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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