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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쌓아 우리들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담을 쌓고 해자를 깊이 파는 것은 오히려 ‘공감의 반경’을 줄임으로써 서로에 대한 오해를 더 쌓는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담을 쌓았지만, 나는 더 불안해지고, 상대는 나를 더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첫째요,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는 것이 꼴찌라고 했고, 파커 팔머는 그의 책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에서 ‘안전과 만족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친구로부터 획득된다’고 했다. (본문 중)

 

현승호(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작년 8월 대한민국은 노조가 아닌 일반 교사들의 집단행동 앞에 다소 당황하는 듯 보였다. 이례적인 교사들의 집단행동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교권 5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만들었다. 이 법들의 국회 통과는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 힘을 받아서 22대 국회에서는 교사 출신 국회의원이 3명이나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교사들에게 지난 1년은 오히려 공허함만 더 커지게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달라진 것이 없는 교육 현장

 

서이초 사건 1주년을 맞아 교권 보호와 관련된 교육부의 성과 발표를 보면, 거의 모든 지표에서 90% 이상을 이루어 교권 보호를 위한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1) 그러나 이는 현장 교사들의 현실 인식과 너무나 달랐다. 좋은교사운동이 실시한 설문에서 현장의 교사들은 대부분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2) 여전히 선생님들은 무고성 아동 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오롯이 혼자서 학급의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을 감당해야 하는 환경에 있다. 법과 제도를 갖추었어도 실제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예로, 수업 중 정서 행동 위기 학생이 교사와 다른 학생의 수업을 심각하게 방해할 때, 분리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만, 누가, 어디로 분리 조치를 하고 그 후에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력도, 장소도, 예산도,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과 연수에 수백억 원의 돈을 쏟아붓고, 2028 대입제도는 정시 확대 기조로 개편하여 경쟁 교육은 더욱 치열해졌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보면 오히려 학교를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응원하는 SNS 피드가 넘쳐난다. 정작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현장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생님들인데 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현장에 남아 있는 교사들은 더욱 움츠러들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 높은 담장을 쌓게 되었다. 교사와 교사 사이에 담이 쌓이고, 교사와 학부모 간의 담은 더욱 높아졌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담이 생겼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최소한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쌓아 올린 담 안에서 우리는 과연 안전할까?

 

먼저, 교사와 교사 사이에도 담이 생겼다. 작년 9‧4 집회 징계 예고 사태3)와 노란 버스 사태4) 이후 관리자는 나를 돕고 보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부의 하수인이라는 교사들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고, 그 상실감과 비난의 화살은 이를 비호하거나 중재하려는 중견 교사들에게 날아와 꽂혔다. 후배들은 학교의 사소한 문제도 동료나 선배 교사에게 묻기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묻는다. 저경력 교사들은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말을 걸지 않고, 선배들은 ‘내가 뭐라고…’ 하는 마음에 말을 걸지 않는다. 그 결과 학교는 각자도생의 외로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교실과 교실 사이, 교무실의 책상과 책상 사이에 담이 생겼다.

 

둘째로,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담은 더욱 높아졌다. 학부모 상담 주간이 폐지되고, 교원 평가가 2년째 유보되면서 학부모 공개 수업도 없어지게 되었다. 속초 현장 학습 사태5) 이후 교사들이 현장 학습을 꺼리는 모습을 보이자, 모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무리하게 교사 직무 유기 프레임을 꺼내 들었고, 이에 교사들은 학부모는 학교 교육의 주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며 학교 교육에서 학부모를 배제하고 싶어 한다. 이제 학부모는 학교에서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셋째, 교사와 학생 사이의 담이 생긴 것은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흐린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잘못한 것을 봐도, 활동을 안 해도, 엎드려 자도,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지나간다. 지적하면 서로 피곤해지고, 누구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가방에 불법 녹음기가 있지 않나 의심하며(또는, 이미 있다고 생각하고) 수업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수업했던 교사들이 가장 먼저 교육 포기를 선언하고, ‘교과서 이외의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최소한의 수업만 하겠다’고 선언한다.

 

처음부터 교육부가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을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한 초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쪽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다른 한쪽은 학생인권특별법 제정으로 서로 대립하면서 없던 담을 만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

 

이렇게 교육 주체들은 관계가 단절되고 높은 담에 둘러싸여 서로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손안에 있는 인터넷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초연결 시대의 SNS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묶어놓아 ‘디지털 부족화(tribalization)’ 현상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확증 편향은 굳어지고, 그 안에서 상대방을 힐난하며 ‘공감의 반경’은 오히려 줄어든다. 결국 같은 부족끼리만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여기다 보니 이런 협소한 공감이 혐오와 차별을 양산한다.6) 그래서 실제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상한 교사, 진상 학부모, 구제 불능 학생이 온라인에서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을 쌓아 우리들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담을 쌓고 해자를 깊이 파는 것은 오히려 ‘공감의 반경’을 줄임으로써 서로에 대한 오해를 더 쌓는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담을 쌓았지만, 나는 더 불안해지고, 상대는 나를 더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병법에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첫째요,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는 것이 꼴찌라고 했고, 파커 팔머는 그의 책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에서 ‘안전과 만족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친구로부터 획득된다’고 했다.

 

“말 걸기” 캠페인을 제안하며

 

좋은교사운동은 지난 학기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 3주체가 참여하는 “교육 공동체 회복 대화모임”을 3회에 걸쳐 진행했다.7) 그 대화 모임을 통해 파커 팔머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실제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교육 공동체를 분리하는 굳어진 담에 틈을 내고, 오히려 서로 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대화’다. 나를 신고하고, 협박하고, 갑질하고, 폭행하는 사람과 대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 혹은 준범죄자에 해당하는 사람, 그리고 매우 무례한 이들을 제외하고도 90% 이상의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안심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

 

말걸기 키링, ⓒ좋은교사운동

 https://goodteacher.org/bbs/board.php?bo_table=main_event&wr_id=450

 

대화의 시작은 누군가가 말을 걸 때다.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뉴욕의 택시 기사들이 내면의 두려움을 상쇄시키고 직업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것도 총기 휴대나 방탄복 착용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낯선 손님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8) 이를 통해 그들은 상대의 머리에 뿔이 달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걸기” 캠페인의 슬로건은 “나는 하루 한 명에게 말 걸기를 선택한다”이다. 먼저 하나님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그다음으로 동료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말을 걸자는 캠페인이다. 말을 걸어 대화를 시작하고, 그 대화로 막힌 담에 틈을 내자는 캠페인이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 같지만, 모든 크고 중요한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마치 “벌새 이야기”에 등장하는 벌새가 불타는 숲에서 작은 물방울 한 모금을 불길 위에 떨어뜨린 것처럼,9) 불타는 숲과 같은 학교를 향해 대화라는 작은 물방울을 입에 물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있다면, 교육 공동체는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1) 교육부, “서이초 1주기, 이렇게 달라졌습니다_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두텁고 촘촘하게!”, 2024. 7. 25.

2) 좋은교사운동, “서이초 1주기, 교권보호 정책 실효성 평가 설문 결과 발표”, 2027. 7. 17.

3)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일일 2023년 9월 4일에 교사들이 연가를 사용하는 집단행동을 계획했으며, 교육부는 이를 불법 행위로 간주하고,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교사들에 대해 징계를 예고했던 사태(편집자 주). 관련 기사: “국민 96% ‘9.4 집회 참여 교사 징계 부적절교직단체 설문”, 「뉴시스」, 2023. 9. 1.

4) 2023년 7월, 정부가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에 어린이 통학버스(일명 ‘노란 버스’)만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리면서 발생한 문제. 이 지침으로 인해 노란 버스를 구할 수 없어 많은 학교들이 현장체험학습을 취소하게 되었다(편집자 주).

5) 2022년 11월 속초시의 한 테마파크에서 현장학습을 간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어 사망한 사건으로, 학생 인솔 교사들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편에 넘겨진 사건(편집자 주).

6) 과천과학대 장대익 교수의 발언 중 인용.

7) 좋은교사운동, “교육 공동체 회복 대화모임 결과 보도자료”, 2024. 1. 26.

8) 파커. J. 팔머,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2014), 158-160.

9) “왕가리 마타이가 들려주는 벌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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