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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혼자 살 수 없는 법. 사람이 다 그렇지만 뱀파이어 철수 같은 ‘나그네’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를 괴롭히는 해걸 같은 개인과 패거리, 제도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령과 국영 같은 이들이 더더욱 소중하다. 아니, 그들은 나그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사랑과 환대에 힘입어 ‘착한 뱀파이어’ 나그네 철수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넉넉히 생존하기를, 아니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옆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다. 뽀얀 피부의 예쁘장한 부자(父子)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좀 묘하다. 낮에는 나오지를 않고 창에는 늘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일까?
웹툰 <옆집 이방인>은 이렇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부자의 정체를 굳이 꼭꼭 숨기지 않는다. 이들이 루마니아인들이라는 점. 햇볕을 극도로 피한다는 점만으로도 정체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의 정체를 가지고 숨바꼭질할 마음이 없는 듯하다.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많은 작품들은 그 압도적 체력과 능력에 기댄 액션이나 호러의 장르에 머문다. 하지만 <옆집 이방인>은 그와 결이 다르다. 이 작품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이방인과의 공존 방법을 모색한다. 이방인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기 등장한다. 이방인을 ‘우리와 다른 위험한 존재’라고 상정할 때, 이방인의 은유로 뱀파이어만한 것도 없을 터. 하지만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은 뱀파이어가 있다면? 인간이기를 원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일단 이 부자를 좀 더 소개한 다음, 작품 속 세 등장인물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해 보자.
민수와 철수
민수, 철수 부자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했다. 이들은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아니, 민수가 아들에게 그런 생활을 강요한다고 해야겠다. 아버지 민수는 루마니아어 번역으로, 아들 철수는 밤에 대리운전을 해서 생활비를 번다.
아버지 민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그는 매사에 조심하고 가능하면 다른 이들과 어울리거나 얽히지 않으려 한다. 그에게 세상은 위험한 곳, 인간은 어떻게든 피해야 할 대상이다. 뱀파이어로서 가진 힘은 그런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드러내지 말아야 할 하나의 특성일 뿐.
번역을 하는 민수와 달리 아들 철수는 야간 대리운전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떻게든 직접 어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수는 철수가 걱정이다. 경험도 미숙하고 세상을 잘 모르는 아들 철수가 젊은 혈기에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민수가 물려준 훤칠한 외모에 힘입어 철수는 특별한 인연을 만난다.
사랑, 인간성을 지켜준 힘
하령은 옆집에 새로 온 부자에게, 특히 아들에게 관심이 간다. 처음에는 그냥 잘생겼지만 어둡고 퉁명스러운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지만, 이런저런 흥미로운 계기와 만남 끝에 철수와 사귀는 사이가 된다. 아버지 민수가 바라던 대로 철수가 뱀파이어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상대가 생긴 것이다. 그 소식에 대한 민수의 반응을 보면 그가 아들에게 이런 짝이 생기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와 긴밀히 얽힌다는 것. 그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된다는 것. 그의 아픔에 아파하고 그가 당한 일에 기뻐하거나 분노한다는 것. 더 이상 자기만의 세계에서 평정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충돌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법이지만, 하령은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가해자들의 행동이 도를 넘어가면서 철수의 폭력성이 발휘될 상황이 만들어진다.
결국 철수는 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앞에서 말했듯, 뱀파이어 철수의 생존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이 바로 뱀파이어로서 가진 능력이라는 점이 증명된다. 힘의 과시로 상황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위험은 더 커진다. 일진 무리가 하령을 괴롭히고, 철수가 그들을 응징하고, 그들이 하령에게 복수하고, 다시 철수가 그들을 응징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철수의 생존은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만다.
하령이 연인으로서 철수의 폭력성을 촉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철수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철수의 인간성을 붙들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철수의 눈이 벌겋게 변하면서 뱀파이어의 모습을 드러낼 뻔했는데, 하령은 그런 철수를 제지했다. 이후 철수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뻔했을 때도 하령은 철수를 다시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린다. 하령도 괴물 뱀파이어 철수와는 살 수 없었을 터. 하령이 없었다면 철수는 완전한 괴물이 되었을 것이고, 철수가 인간과 공존하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하령의 사랑이 철수를 사람으로 남게 했다.

웹툰 <옆집 이방인> 포스터.
증오와 괴롭힘, 괴물을 끌어내다
해걸은 하령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이다. 해걸은 하령을 괴롭히는 일진 패거리의 두목이다. 동네 재개발을 주도하는 그의 재력가 아버지는 아들을 아끼고, 해걸은 싸움에 능하다. 그래서 그는 무서운 게 없다. 시비가 붙으면 확실하게 응징한다. 그래도 문제가 없다. 아버지가 뒤처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해걸이 이끄는 패거리의 표적이 되었으니 하령의 인생이 제대로 꼬였다.
처음에 해걸에게 하령은 패거리와 함께 괴롭히는 대상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령은 씩씩하고 꼿꼿한 주인공. 해걸은 그런 하령을 확실히 밟으려 든다. 하지만 하령이 철수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물론, 처음에 해걸의 눈에는 철수도 하령처럼 그냥 짓밟으면 되는, 만만한 존재로 보였다. 철수가 인간들과의 공존을 위해 썩 훌륭하게 자신을 감추었던 것이다.
뱀파이어 철수가 강력한 힘을 감추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인간 해걸은 인간 이하의 모습으로 거침없이 살아간다. 철수에 비하면 인간으로 남는 것이 너무나 쉬웠을 해걸은, 자신이 가진 알량한 힘을 자랑하며 폭주해서 뱀파이어만도 못한 모습을 보인다.
하령이 이방인 철수를 사랑하여 그의 인간성을 지켜주는 존재라면, 해걸은 이방인 철수를 괴롭히고 자극해서 철수 안에 잠재된 최악의 모습을 끄집어내는 존재다. 해걸이 그렇게 하령과 철수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철수가 그토록 억제하고 감추려 했던 그의 공포스러운 면모를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그에게서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말은, 이 웹툰 안에서만 유효한 진술이 아닐 것이다.
추적에서 환대로
형사 출신의 탐정 국영은 전반부에서 가장 거슬리는 캐릭터다. 형사 시절에 수사했던 미제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조사한다. 결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그는 민수와 철수 부자가 그 사건의 범인이며, 그들이 뭔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그의 짐작대로 그가 추적하는 대상이 악당, 더 나아가 괴물이라면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에게 신성한 의무라 할 만한 것일 터였다.
그런 공익적 목적이 있었기에 국영은 편법과 탈법을 넘나들면서 민수 부자를 미행, 감시하고 하령 같은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고 압박한다. 그 과정에서 부자의 정체를 알게 되고 자신의 촉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좋아한 것도 잠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국영은 뜻밖에도 뱀파이어 민수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 인간성을 그대로 간직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평범하게 살려던 민수와 철수 부자의 노력을 자신이 망쳐버렸음을 깨닫는다.
그 이후로 국영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까지는 민수 철수 부자를 ‘위험한 이방인’으로 판단하고 추적했다면, 이후로는 그들을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나그네’로 바라본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정착하여 사는 것뿐이었다. 신학자 김진혁에 따르면, 그리스어로 나그네(xenos)와 사랑(philia)를 하나로 압축한 단어가 현대인의 입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환대’(philoxenia)다.1) 환대는 곧 나그네에 대한 사랑이다. 국영의 변화는 배제에서 환대로의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국영은 자신이 민수 철수 부자에게 가한 폭력을 뉘우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다. 민수와 철수가 개입된 위험한 현장에 뛰어들어 중재를 시도하다 큰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그의 뛰어난 수사 능력과 경찰들을 상대하는 노하우 등을 활용해서 하령과 철수의 가장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준다. 그는 옴짝달싹 못하게 된 철수와 하령의 삶에 숨통을 틔워주고 살길을 열어 준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가 철수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고 철수와 하령을 돕다가 마침내 그들의 마음까지 얻는 모습은 환대의 특성과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은유로 읽힌다.
철수를 향한 응원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는 법. 사람이 다 그렇지만 뱀파이어 철수 같은 ‘나그네’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를 괴롭히는 해걸 같은 개인과 패거리, 제도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령과 국영 같은 이들이 더더욱 소중하다. 아니, 그들은 나그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사랑과 환대에 힘입어 ‘착한 뱀파이어’ 나그네 철수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넉넉히 생존하기를, 아니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을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우선, 인간은 누구나 언제라도 뜻밖에 이방인이나 나그네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모든 인간은 내면에 ‘뱀파이어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 또는 다른 집단에게 괴물 뱀파이어처럼 보일 수 있다. 당신은 어떤가? 혹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특정 집단을 괴물 뱀파이어처럼 여기고 한사코 증오하거나 배제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1) 『환대의 신학』, 김진혁, IVP,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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