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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는 당시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을 경험한 세대가 전쟁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과학에 요구되는 비판적 분석이 거의 사라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인류가 참혹한 전쟁을 경험했다면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그러한 전쟁이 발생했는지 철저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제 정치학은 단순히 다시는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본문 중)

 

박민중(국제정치 칼럼니스트)

 

공교롭게도 E. H. 카의 대표 저작인 『20년의 위기』(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가 발표된 1939년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이에 많은 독자들은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혹은 발발하고 난 후에 카가 이 책을 집필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였는지 카 또한 이 책을 출간한 1939년 책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1937년에 처음 기획되었으며, 1939년 7월 중순에 인쇄소로 보내졌고, 1939년 9월 3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이미 교정쇄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카가 굳이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하나는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하나의 마케팅 기회로 삼아 책을 많이 팔아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는 나름의 학자적 변명이었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이미 예견한 것으로, 자신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양상에 대한 판단이 옳았다는 학자적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이다.

 

오늘의 글은 크게 세 가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첫째와 둘째는 간략하게 저자인 카는 누구이고 그가 책에서 제시한 1919-1939년의 시기의 시대상은 어떠했는지이며, 셋째는 이 책의 핵심 내용, 즉 저자의 핵심 주장이 무엇인지 다루고자 한다.

 

<사진 1, 2> 『역사란 무엇인가』로 대중에게 알려진 카(왼쪽)와 그가 1939년 출간한 『20년의 위기』 표지 사진(오른쪽)이다.

(출처: 중앙일보/Elcano Royal Institute)

 

 

한국에서 카를 아는 사람이라면 80% 이상은 그를 1961년 출간된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가 역사학자일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카는 외교 공무원이었고, 이후에는 국제정치학자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 외무부에 입사해 약 20년을 근무한다. 당시 그는 1차 대전 이후 유럽의 재건 문제와 영국의 외교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 경험은 그가 국제정치학자로 활동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아마 그가 이런 실질적인 경험 없이 단순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줄곧 학교 울타리 안에서 학자로만 존재했다면, 1939년 『20년의 위기』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936년 그는 외교 공무원직을 마치고 지난 글에서 말했던 국제정치학이라는 학문이 처음으로 등장한 애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로 임용된다. 그리고 거기서 탄생한 책이 바로 『20년의 위기』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된 배경이 되는 1919년부터 1939년 사이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표면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는 이같이 참혹한 전쟁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나름 이상적인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던 시기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과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인 사망자는 약 1,000만 명, 부상자는 약 2,100만 명, 실종자 및 포로는 약 700만 명에 달했다. 민간인 사상자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발생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약 150만 명을 제외하고도 최소 600만 명에서 최대 1,3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화를 열망하고, 정치인들은 이 평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W. Wilson)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당시 윌슨 대통령은 국제정치에서 도덕과 법을 중시하며,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 국제법,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이상주의(Idealism) 또는 윌슨주의(Wilsonianism)라고 부른다.

 

<사진 3>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을 역임한 우드로 윌슨 (출처: 주한미국대사관)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발간된 카의 저작인 『20년의 위기』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며, 이 책은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현실주의 이론의 현대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을까?

 

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W. Wilson)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이상주의(Utopianism)와 그들의 목적 지향론적 사고에 대해 강력한 문제를 제기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차 대전 이후 1920년대의 국제정치를 되돌아보면,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일반 시민들과 정치인들은 평화를 향한 강한 갈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차 대전이 종결되자마자 1920년 미국의 주도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창설되는 것을 평화를 향한 열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1928년 미국과 프랑스는 국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것을 명문화하기에 이른다. 이 조약이 바로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이다. 이처럼 1차 대전이 끝나고 불과 10년 사이에 국제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카는 당시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을 경험한 세대가 전쟁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과학에 요구되는 비판적 분석이 거의 사라졌다고 진단한다.1) 그는 인류가 참혹한 전쟁을 경험했다면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그러한 전쟁이 발생했는지 철저한 분석과 비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제 정치학은 단순히 다시는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몇몇 학자들이 내놓은 분석적 비판들은 그저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의들로 낙인찍혔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사회적 분위기는 물론 학계에서도 주류를 점하고 있던 이상주의(Idealism)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그는 당시 이상주의자들이 현실의 ‘사실들’(facts)과 이에 기반한 인과관계를 분석하기보다는 그저 자신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이상주의적 계획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평가한다.2) 특히, 당시 주류 전문가들의 계획들은 전쟁을 경험한 대중들로부터도 손쉽게 지지를 받으며 그 악순환은 이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적 학문은 ‘존재하는 것’(what is)과 ‘존재해야 하는 것’(what should be)을 구분해야 한다고 일갈한다.3)

 

결국 그의 논의와 주장은 당시 주류로 자리매김한 이상주의는 학문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국제)정치학이라는 학문이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과 달리 완벽하게 목적론적 사고에서 유리될 수는 없지만, 학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기반한 현실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그 20년의 기간이 이상주의가 말하는 평화의 시기가 아닌, 현실에서 유리된 상황 인식으로 인해 1차 세계대전보다 더 참혹한 전쟁의 씨앗이 잉태되는 시기였다는 점을 카는 지적한 것이다. 이에 그는 현실주의(realism)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를 이상주의적 소망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시하므로 비판적이고 냉소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한다.4) 다시 말해, 카는 국제정치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바라는 소망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에 기반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요약하면, 『20년의 위기』는 E. H. 카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외교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험과 이후 국제정치학자로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일반인과 정치인 그리고 학자들을 향해 호소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에 일반인들은 물론 엘리트 집단들이 가진 잘못된 사고에 대한 전환을 요구하고, 감상에 젖은 이상주의자들에게 분석에 기반한 학문으로 돌아오라고 초대하고 있다.

 


1) E. H. Carr,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London: Macmillan, 1939), pp. 1-11.

2) E. H. Carr (1939), p. 5.

3) E. H. Carr (1939), p. 9.

4) E. H. Carr (1939),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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