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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한국 청년의 독립은 늦은 시기에 이루어지는 편이다. 사회학자 이상직은 청년의 성인 이행 경로를 국제적으로 비교하여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북부 유럽의 청년들이 남성은 23.1세, 여성은 21.7세에 원가족을 떠나 거주하는 반면, 동아시아 청년들의 분가 시기는 남성은 29.3세, 여성은 27.8세로 평균 20대 후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본문 중)
김선기1)
“최대한 오래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이미 수백 번 다른 입으로부터 들었던 말이었는데, 이번에도 ‘기대와 어긋난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여기 이 지역은 서울과 달리 집값도 저렴하고, 그는 이미 서울에서 1인 가구 생활을 해 본 적이 있는 청년이었다. 자취를 경험한 후 부모와 동거를 다시 하게 된 자녀들은 보통 큰 불편함을 느끼고, 이는 독립의 계기이자 신호가 된다. 그래서 그 불편함을 조금 건드려주면, 자신만의 삶을 펼쳐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오지 않을까 했다. 사실 기대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붙어 있을 것’이라는 청년의 말에, 나 역시 청년으로서 그 마음 잘 안다는 듯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짓고 말았다.
적극적으로 독립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적어도 한국에는, 많다. 2024년 국무조정실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실시한 “2024년 청년 삶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중 독립생활을 하는 청년의 비율은 45.6%로, 나머지 54.4%의 청년은 부모와 동거 중이다. 혼인을 통해 독립 가족을 구성한 청년은 19.0%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한국 청년의 독립은 늦은 시기에 이루어지는 편이다. 사회학자 이상직은 청년의 성인 이행 경로를 국제적으로 비교하여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북부 유럽의 청년들이 남성은 23.1세, 여성은 21.7세에 원가족을 떠나 거주하는 반면, 동아시아 청년들의 분가 시기는 남성은 29.3세, 여성은 27.8세로 평균 20대 후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2)
이러한 미-독립 혹은 이행 지연의 상태를 우리 사회는 청년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보통 문제에는 원인 진단과 해결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보통 이 문제의 원인을 금전적 어려움과 젊은 세대의 독립심 부족(심한 경우 이기심)에서, 해결책을 일자리를 통한 소득 및 자산 형성 그리고 저금리 대출 상품까지를 포함한 주거 복지 확충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 답은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왜 많은 청년들은 취업 후에 멀쩡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부모와 함께 살기를 원할까? 왜 2025년의 한국 청년들은 서울에서 태어난 것을 스펙이라고 말할까? 이미 1인 가구가 된 청년들은 왜 독립을 성취하였는데도 외로움을 느끼고, 정서적,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가 될까? 이런 질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청년의 독립을 바라볼 때 세 가지 관점을 덧붙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청년의 현재를 전략적 선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독립을 둘러싼 청년의 결정은 장기적인 시간성에 대한 고려 위에서 이루어진다. 결혼, 내 집 마련, 노후 대책 등의 자금 마련을 위한 대비와 계획을 20대부터 시작하는 시대상 위에서 볼 때, 만약 부모와의 동거를 통해 당장의 주거비를 절약해 저축 혹은 투자할 수 있다면, 꼭 집 밖에 나가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특히 중산층을 포함해 그 이하의 경제 수준에 있는 많은 청년들에게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현재의 욕망을 억누르고 월 지출을 줄여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심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2024년 청년 삶 실태 조사”에는 청년들에게 직접 ‘적정 독립 시기’가 언제인지를 묻는 항목도 있다. 청년들은 ‘취업 후’(26.4%), ‘결혼 후’(17.9%) 등 생애 주기 독립 과업이 달성된 시점을 꼽기도 했으나, ‘자산 형성한 이후’로 보는 응답이 36.3%로 가장 많았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를 갖게 되는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 청년 독립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일자리의 유무보다는 어떤 일자리에서 어떤 미래 전망을 그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독립이라는 어휘에 깃들어 있는 계급적 뉘앙스를 끄집어내어 읽는 것이다. 2021년 JTBC에서 방영한 <독립만세>라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20대 초중반의 이찬혁, 이수현 남매, 그리고 30대 초반의 재재(이은재)가 1인 가구로 독립하여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매우 성공한 가수인 AKMU가 사는 비현실적인 고급 빌라는 아니더라도, 꽤나 훌륭한 직장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프로듀서 이은재가 서울 양평동에 구한 전세 3억 원대의 오피스텔,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독립’의 이미지다. 타지에서 대학이나 직장을 다니면서 얻게 된 원룸 월세방? 그런 건 보통 ‘자취’라고 하지 ‘독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매우 한정적인 인구만 달성 가능한 ‘상류층적인’ 생활양식이 독립의 의미망을 장악함에 따라, 독립은 원래보다도 훨씬 더 달성하기 어려운 무엇으로 변했다. 취업이든, 결혼이든, 출산과 육아든, 청년에게 주어진 모든 생애 과업의 표준이 과열되는 현상, 그 표준에서 여러 방식으로 어긋나는 생활에 가해지는 사회적 모멸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독립이라는 과업을 물리적, 제도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차원에서 다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숫자로 보기 시작한 이래, 독립은 했는지(1) 또는 안 했는지(0)로 나뉘는 무엇이 되었고, 그 판별 기준은 누구나 쉽게 구분하여 배치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화됐다. 부모의 집을 떠나면 독립, 안 떠나고 함께 살면 미-독립의 상태다. 이분법의 세계에서 우리는 청년이 마치 독립을 하기만 한다면, 그의 무엇이라도 해결이 된 것처럼 얘기해 버리고는 한다. (‘취업만 하면’,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으면’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독립할 마음의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집에서 너무 먼 곳으로 떠나게 되는 바람에 떠밀리듯 분가하는 일은,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에 거주하며 건물주에게 월세만 계속 내게 되는 일은,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기 어렵다.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지만, 모든 생활비용을 부모로부터 지원받는, 또 그럼으로써 인생의 선택에 대한 결정 권한 또한 부모에게 남아 있는 상황 또한 실질적인 독립이라고 볼 수 없다.
반면 부모와 오랜 기간 함께 살더라도 어떤 청년은 실질적인 독립을 이룬 상태일 수 있다. 가족 내에서 독립적인 인격적 주체로 새롭게 자신의 자리를 정립하고, 가정 내의 여러 가지 업무와 결정의 책임을 나누어 맡으며, 자기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선택을 스스로 해 나갈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말이다.
독립의 문제는 개인이나 한 세대의 성향으로 환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독립의 문제를 보다 상세한 관점을 가지고 보게 되면, 우리는 이것이 다른 모든 현상들과 동일하게 복합적이며 따라서 그 해결책도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소폭이라도 늘어나는 청년 지원 정책에도, 독립은 한국 청년에게서 왜 점점 멀어지는가? 이 질문의 열쇠를 찾으려면, 결국 관점을 확실히 전환해야 한다.
1) 국립부경대 HK연구교수,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2) 이상직, “한국 청년은 언제 집을 떠나는가: OECD 국가 비교”, 「국가미래전략 Insight」, 제64호(국회미래연구원 2023). 이 자료는 2023년 발간되었으나, 2005년과 2010년 시점의 통계 자료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다만, 전반적인 청년의 성인 이행 경향성에는 큰 변화가 있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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