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그 후 1년]
한국 교회의 501년된 종교개혁
글_ 조성돈 본부장
(교회신뢰운동본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얼마전 종교개혁주일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씁쓸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주변을 광풍처럼 휩쓴 일은 명성교회의 세습 건이었습니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를 아버지가 아들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백번양보해서 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 주변에서도 세습한 분들도 있습니다. 한 둘이 아니라 여럿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습은 절대 안 된다는 소리는 잘 안 합니다. 하지만 명성교회는 노회를 흔들고, 총회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힘을 이용해서 이렇게 판을 흔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위를, 총회와 노회의 권위를 모두 무너뜨렸습니다.
최근 공중파의 한 보도프로그램에서 명성교회에 대해 파헤쳤습니다. 상당한 문제점들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규모만 다를 뿐 우리 안에도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모임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교회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는데, 결론적으로 우리가 그런 일에 대해서 이미 내성이 생겨 버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정도는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상당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악에 대한 내성으로 악을 악으로 보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안에 있는 ‘악의 전제’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는 악의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그렇다고, 그게 관행이고,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다고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고칠 생각을 못 하고 적응해 버리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윤리의 기준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 선과 악의 기준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포스트모던의 영향으로 절대적인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건 이미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양극화로 인해 나타난 현상도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너무 나뉘어져 있고, 세대별로도 너무 멀어져 있습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이 둘은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누가 주장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편이 이야기했다면 그건 무조건 진실이고 진리이며, 상대 편이 이야기했다면 그건 무조건 거짓이고 잘 못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 사회가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안에 이러한 ‘악의 전제’와 ‘윤리적 기준의 상실’이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성범죄 이야기는 이제 기사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느 교단은 회장의 자리를 놓고 끝없는 쳇바퀴를 돌리고 있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 교단의 신학대학교는 용역이 나서고 난리 끝에 총장과 이사회가 물러나는 사태를 맞았습니다. 또 이단들의 문제도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리스트는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 501년을 지납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민낯입니다. 작년에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참으로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회개의 집회가 열렸고, 루터의 정신을 담겠다고 많은 세미나와 행사를 열었습니다. 생생한 루터의 종교개혁현장을 보겠다고 수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직접 독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마주한 모습은 부끄러움 뿐입니다.
종교개혁의 유명한 경구는 ‘항상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새롭게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한국교회에서 501년 된 종교개혁을 봅니다. 501번째의 종교개혁이 아니라 500년 묵은 종교개혁의 추억만 남은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에서 1천 년 된 중세교회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출처 : 기독교연합신문 오피니언]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7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