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하면서 내게 요구된 것은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앱을 깐 후에 위치 설정에서 ‘항상 허용’을 켜라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이 앱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앱은 정기적으로 열 체크 등 자가 진단 목록을 올리라고 알림을 주었고, 한 번씩은 위치를 이탈했다고 확인해 달라는 알림을 주기도 했다. 집에 콕 박혀 현관에도 안 나갔건만 왜 그런 알림이 오는지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했더니, 전화기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분들이 있어서 전화기의 움직임이 너무 없으면 그런 알림이 뜨니 정기적으로 핸드폰을 만져 주라고 한다. 황당했다. (본문 중)

양혜원(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새해 들어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10박 11일간의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집안일로 영국에 다녀오게 되면서 밟아야 했던 절차였다. 입국하면서 내게 요구된 것은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앱을 깐 후에 위치 설정에서 ‘항상 허용’을 켜라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이 앱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앱은 정기적으로 열 체크 등 자가 진단 목록을 올리라고 알림을 주었고, 한 번씩은 위치를 이탈했다고 확인해 달라는 알림을 주기도 했다. 집에 콕 박혀 현관에도 안 나갔건만 왜 그런 알림이 오는지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했더니, 전화기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분들이 있어서 전화기의 움직임이 너무 없으면 그런 알림이 뜨니 정기적으로 핸드폰을 만져 주라고 한다. 황당했다.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몇 시간씩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도 있는데…. 심지어 한번은 밤 11시가 넘어서 그런 알림이 오길래 이건 정말 24시간 감시구나 싶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AI의 전화를 받았다. 사람도 아닌 기계의 감시를 받는 그런 생활을 며칠 정도 했을 때, 이번에는 애플사에서 온 알림이 떴다. 지금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이 너의 위치를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는데, 그대로 두어도 되느냐는 알림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나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애플이 걱정해 주다니….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존재를 감시하기 위해 또 감시하는, 감시자 위의 감시자인 것일까. 그 알림은 그 후로도 한 번 더 떴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항상 허용 버튼을 눌렀다. 국가가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12월 말에 뜻밖의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서 겪은 일이다. 예기치 못한 일로 계획보다 일찍 부모님이 영국으로 가시게 되었고, 어머니가 다치시면서 도움이 필요하게 되어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내가 떠날 때는 오미크론의 확산 때문에 위드코로나로 돌입했던 영국이 플랜 B를 채택하면서 입국 절차를 강화한 때였다. 떠나기 전 코로나 음성 증명서(PCR 검사 결과지) 제출은 물론이고, 도착해서는 격리하면서 이틀 안에 코로나 검사(PCR)를 받아야 했고,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출국 전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았다. 출국이 이렇게 번거로운 일이었던가.

 

다른 사회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확진자 한 명 발생하면 비상사태가 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휴지 조각이 되어 내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나까지 공개되는 사회에서 2년간 살았기에, 그것이 내 머릿속에 코로나 시대를 사는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 입국 시 코로나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거주지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했을 때 제법 삼엄한 상황을 예상했다. 가기 전에 온라인으로 입력한 서류들 또한 입국 심사에서 제법 꼼꼼하게 보리라 생각했다. 2019년부터 영국은 별도의 입국 심사 없이 전자 여권 스캔만으로 입국을 허용해 주는 몇 안 되는 국가에 한국을 포함시켰는데, 그런 특권이 코로나 시대에는 잠시 중단되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나의 이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2019년 입국 때처럼 아무런 심사 없이 전자 여권 스캔만으로 입국이 되었고, 그렇게 열심히 작성한 서류를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출국 전에 미리 온라인으로 입력했다 해도 이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 건가? 잔뜩 긴장했다가 어쩐지 맥이 풀리면서 예상치 못한 자유에 다소 얼떨떨해하며 부모님 집으로 이동했다. 코로나 검사도 출국 전에 사전 예약한 곳에서 거주지로 PCR 검사 패키지를 보냈고, 패키지를 열어 직접 검사를 시행해서 검체를 담아 우편으로 보내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후 이메일로 음성 결과서를 보내주었다. 나흘 정도의 그 시간 동안에 아무도 나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후로 두 주 반 정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코로나를 무서운 질병으로 만든 것은 과연 코로나 자체 때문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코로나를 어떤 질병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은 코로나 자체의 성격과 더불어 한 사회가 코로나를 다루는 방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 영국에 머무는 동안 옥죄던 마음이 상당 부분 풀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생각하게 된 부분이다. 한국보다 기하학적으로 많은 숫자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나라이건만 한국과 같은 위기감은 느낄 수 없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따라서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있지만, 한국처럼 ‘걸리면 끝이다’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걸리면 끝이다’라는 분위기는 질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그 후에 일어나는 사회적 낙인에서도 기인하리라 본다. 병도 무섭지만, 병 때문에 나를 취조하는 사회도 그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다.

 

내가 귀국한 직후 영국은 다시 입국 규제를 원래대로 완화했고, 얼마 전에는 정부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다고 (내각의 환호를 받으며) 발표했다. 정부가 더는 재택근무를 요구하지 않고, 유흥업소나 대형 집회 같은 곳에서의 백신 여권 의무화도 폐지된다. 이러한 발표를 하면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많고 좁은 장소에서나 평상시 잘 만나지 않는 사람과 만날 때는 마스크를 쓸 것을 여전히 권하겠지만, “영국 국민의 판단을 믿는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 전염병과 관련해서 국가가 개입해서 의무 사항으로 내세웠던 모든 것을 철회하고 권고 수준에서 지도하며, 나머지는 개인의 현명한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처에는 머지않아 코로나 확진자도 격리 의무를 해제하고 권고 수준으로 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격리할 것을 권고하되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독감 환자를 강제 격리시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영국의 선택이 과연 옳은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있다. 한국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는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축구장에 마스크도 안 쓰고 가득 모인 관중이라니. 축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축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였고, 그 자유를 제한하는 불필요한 정부의 개입은 국가의 월권행위였다. 오래전 보았던 <브레이브하트>(Braveheart)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마지막에 ‘자비’(mercy) 대신에 ‘자유’(freedom)를 외치고 처형당한 것은 제법 상징적이다. 미국 제작 영화이고 상당 부분 픽션이지만, 자유 민주주의 사상을 발전시킨 앵글로족의 전통을 구성하는 서사를 제대로 담은 장면이다. “그들이 우리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의 자유는 결코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회자되는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이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그 정도의 자유를 갈망해 본 적이 없다. 그 영화를 보면서도 ‘자유가 저리도 절박한 것인가’ 했었다. 코로나 시국 2년 동안에도 좀 답답하긴 했어도 내 자유가 그렇게 심각하게 제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행기가 한국 땅에서 바퀴를 떼고 붕 뜨는 순간 나는 어느새 그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벅찬 가슴으로 주인공과 함께 ‘freedom’을 외치고 있었다. 비로소 그동안 나의 이동의 자유가 얼마나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었는지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귀국하자마자 나는 다시 순한 양처럼 나를 보호하는 것인지 감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자가격리자 안전보호앱을 깔고 고분고분 시간 맞춰 자기 점검 리스트를 체크하고 해제되는 날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내가 속한 사회로 돌아가려면 밟을 수밖에 없는 절차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정오를 넘기자마자 앱부터 삭제하였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때와 같은 ‘freedom’의 외침은 없었다.

 

영국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이 선택한 지난 2년간의 생활 방식이 앞으로 미칠 여파도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아는 자유와 그들이 아는 자유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자유라는 개념은 여전히 낯선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 교회만큼 ‘자유하라’라고 말하는 곳이 없건만, 지난 2년간 우리가 들은 것은 정부 지침에 순응하라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유할 것인지, 조금 더 깊이 사유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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