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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타르칸의 고백 ‘인샬라’가 기독교 신자인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고백이 입에 발린 문구를 넘어 인격과 삶의 선택으로 아름답게 구체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대하는 강인함, 이익(利益)보다 정의를 우선시하는 모습. 사람을 대하는 진실함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인샬라’를 가볍게 들을 수 없게 만든다.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오랫동안 월요일을 즐겁게 해주었고, 그렇기에 몇 달 전 연재가 끝나 큰 아쉬움을 안긴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 시즌 2 이야기를 좀 해 보자. 시즌2에서도 작가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놓았다. 시즌 1에서 볼 수 없었던 주인공 장그래의 연애 이야기도 놓치기 아깝지만, 오늘은 인샬라 이야기로 만족하기로 하자.
시즌 2에서 장그래는 시즌 1 대기업 인턴 시절 상사였던 오상식 부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은 회사 온길에서 일한다. 고만고만한 일거리로 직원들 월급 가져가는 것만도 버거운 상황이 한동안 이어진다. 그런 과정에서 짐을 나르다 허리가 삐끗한 장그래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회사 전체를 안정적으로 먹여 살릴 큰 일감이 있어야 했다.
장그래는 자동차 부품 수출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직접 중고차를 한 대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된 그래의 행보는 착실한 준비와 용기와 결단이 뒷받침된 덕분에 여러 반전을 거쳐 새로운 만남과 도전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장그래는 오 부장, 김동식 대리와 함께 요르단 출장을 떠난다. 코트라 요르단 지부의 지원으로 여러 요르단 업체를 만나지만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는 요르단 사람들의 업무 스타일에 그래 일행은 속이 타들어 간다.
그런 그래 일행에게 코트라 요르단 지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자신이 정말 소개해 주고 싶은 회사가 따로 있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만남을 꺼린다고. 그렇게 해서 타르칸 사장과의 만남이 성사된다.
타르칸 사장
타르칸 사장은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입에 달고 산다. 어떤 무슬림에게는 이것이 입에 붙은 문구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타르칸 사장은 그렇지 않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를 그가 한국인과의 거래를 추가로 하지 않게 만든 사건에서 볼 수 있다. 수억 원어치의 자동차 부품을 공급한 한국인 거래처에서 전부 불량품을 보내온 사건이었다. 타르칸이 한국에 있던 친척을 통해 알아본 결과, 문제의 공급자(P라고 하자)는 지인의 사업체를 자기 사무실인 것처럼 속이고 작정하고 사기를 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타르카 사장은 사기를 당하고도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법적으로 대응하면 거래처의 지인이 애꿎게 피해를 당할까 봐 우려한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타르칸 사장이 말한다. “인샬라.” 그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폭발하지도 무너지지도 않는다. 뭔가 신의 뜻이 있겠거니, 그렇게 고백하고 넘어갔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과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았다. 악독한 사기꾼인 한국인을 만났으니, 기존의 거래처 이외에 추가로 한국인들과의 거래는 트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의 활약
여기까지 사정을 듣고 오 부장과 김 대리는 절망한다. 이제 끝났구나, 생각하고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장그래는 물러서지 않는다. 타르칸 사장에게 거래처의 명함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한국의 온길 직원에게 연락하여 바이어로 위장하여 P를 찾아가게 한다. 시즌1부터 함께했던 독자라면 온길 직원들이 P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P의 모습이 드러날 때 그들과 함께 깜짝 놀라게 된다.
P와 악연이 있던 온길의 사장은 온길 ‘패밀리’를 이끌고 P를 찾아가 그를 잠시 붙들어 놓고 장그래에게 연락을 한다. 타르칸 사장에게 한국에서 P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진행할 법적 대리인으로 온길을 임명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타르칸 사장은 차를 타고 떠난 직후였다. 지체할 수 없었던 그래는 타르칸 사장이 탄 차를 뒤따라 무작정 뛰어간다. 마침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래와 타르칸 사장이 만난다. 장그래의 상황 설명과 요청을 듣고 타르칸 사장이 이렇게 말한다. “신이 뜻이 당신이었나 봅니다.”
신의 뜻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신의 뜻’이란 잘못된 믿음에 오도된 사람의 허망한 족쇄든지, 자기 뜻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한 종교 사기꾼의 구호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속이든지 남을 속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설령 둘 다 아니라고 해도, ‘신의 뜻’이라는 말은 숙명론, 운명론을 포장하는 빛 좋은 개살구일 수 있다. 하지만 ‘인샬라’를 말하는 타르칸 사장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잘못된 믿음에 오도된 맹신의 소유자가 아니고, 자기 뜻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강요하려는 위선자나 종교 사기꾼도, 현실에 체념하는 운명론자도 아니다. 신의 뜻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성경의 한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명기 29:29)
이 대목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일이 있다고 말한다.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이다. 감추어진 일은 인간이 알 수 없다. 이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말할 수 있다. 나타난 일은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드러내신 일이다. 모세는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도 있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드러내신 율법에 순종하라고 말한다.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 숨겨진 뜻과 드러난 뜻, 이 구분으로 타르칸이 ‘인샬라’를 사용한 용례를 한번 따져 보자.
타르칸의 ‘인샬라’에서 배운다
첫째, 타르칸은 신의 숨겨진 뜻을 받아들인다.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신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믿음이 그를 붙들어 주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차피 다 신의 뜻인 걸, 이러면서 무책임하게 살지도 않는다. 그는 알게 된 정보(사기꾼 한국인)를 바탕으로 한국인과의 추가 거래는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새롭게 파악된 정보에 따라 상식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타르칸은 자신의 상황에 신이 개입할 여지를 열어 둔다. 신이 불신자를 통해 일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신의 뜻이 당신인가 봅니다”라는 대사를 기억해 보라). 그는 신에게 마음을 닫지 않는다. 신의 선한 인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다.
둘째, 타르칸은 신의 ‘드러난 뜻’에 순종한다. 사기를 당했지만 자신은 신의를 지킨다. 악의를 가진 사람을 만났지만 여전히 사람을 선의로 대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자신이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도 오히려 제삼자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한다. 윤리적 도의적 한계를 정해 놓고 지킨다.
타르칸은 유능한 사업가다. 하지만 사업가이기 이전에 독실한 무슬림 신앙인이다. 그에게는 이익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당장에 손해가 나더라도 옳은 일을 선택한다. 정의를 세우고(사기꾼이 제안하는 배상을 거부하고 그의 처벌을 선택한다). 선의를 베푼다(신의 뜻으로 나타난 장그래가 동업을 제안하자, 그래의 회사에 유리한 조건을 먼저 제시한다).
작가 윤태호 본인도 <미생 2>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이 인샬라 편을 꼽았다. 내가 알기로 그는 신앙인이 아니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 에피소드에 담긴 무슬림의 신앙고백이 신기하고 신선하게, 다시 말하면 ‘의미심장한’ 것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무슬림 타르칸의 고백 ‘인샬라’가 기독교 신자인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고백이 입에 발린 문구를 넘어 인격과 삶의 선택으로 아름답게 구체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대하는 강인함, 이익(利益)보다 정의를 우선시하는 모습. 사람을 대하는 진실함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인샬라’를 가볍게 들을 수 없게 만든다.
<미생 2>는 신자가 말하는 ‘신의 뜻’이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 주었다. 나의 입에서, 글에서 나오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무게 있는 것이 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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