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하늘의 뜻이라거나, 불의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는 재난 심판론을 강력하게 부정한다. 이웃의 재난은 우리의 회개와 도덕적 책임(사랑과 자선의 실천)을 촉구하는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는 자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늘 우리 곁에 있는 우리의 이웃이요 친구들이다. 최근 우한에서 귀국한 동포들을 아산과 진천에서 환영한 배후에는 목회자들의 호소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중국과 주변국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 개인사나 민족사는 전쟁, 전염병, 자연재해와 같이 예상하지 않은 일로 인해 돌발적으로 변한다. 불안한 전환기에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고도 변하고 정치와 문화도 급변하기 때문에, 위기의 상황에서 교회는 교회다움을 드러낼 기회를 얻게 된다. 자연재해, 전쟁, 전염병의 유행과 같은 이 세상의 대형 위기는 사실 교회가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고 영원한 소망을 전할 기회이다.

 

초대교회와 전염병

시리아에 출병했던 군인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로 인해 로마 제국 내 500만 명이 죽어간 안토니우스의 전염병(Antonine Plague, 165–180 AD) 때, 초대 교회는 환자들을 사랑과 희생으로 돌보았고, 그 결과 교회는 성장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키프리아누스의 전염병(Plague of Cyprian, 251–266 AD)은 접촉을 통해 전염되면서 치사율 50%를 기록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로마 제국의 관리나 부자는 전염병이 유행하면 감염자를 피해 도시를 떠났다. 기독교 공동체만 뒤에 남아서 서로를 돌보며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사랑으로 간호했다. 예수께서 나환자를 돌보며 고치신 길을 따라갔다. 결국 많은 교인들이 천국의 소망을 안고 함께 죽었다.

 

근대 한국의 콜레라 유행

한국과 주변국에서 심각한 호열랄(콜레라)이 1886년, 1890년, 1895년, 1902년에 발생했다. 1886년에는 두 달 동안 서울에서만 6,000명 이상의 시신이 동남 문인 광희문[속칭 시구문(屍口門)]을 지나 묘지로 실려 나갔다. 1890년의 경우 80,000명 이상이 일본과 한국과 아시아 쪽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이 모든 손실은 2-3개월 안에 일어났다.

1895년 청일전쟁 후에도 두세 달 만에 서울에서 5,000명 이상이 호열랄로 죽었다. 콜레라의 유행은 ‘귀신론’에 대항하는 기독교의 ‘세균론’을 전파하는 기회가 되었다. 과학과 성령론이 협력한 경우였다. 귀신이 아닌 세균 감염으로 죽는 것을 안 기독교인들은 두려움 없이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며 천국 소망을 가지고 죽었다. 그런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정부는 ‘호열랄병 예방 규칙’ 등을 발표하고, 제중원 원장 에비슨(O. R. Avison, 1860-1956) 의사를 정부의 콜레라 병원 책임자로 임명했다. 많은 외국인 의사와 선교사가 자원해서 이 일을 도왔으며 희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위생 규정을 시행하고 세균론을 전파하기 위해서 애썼다. 선교사 의료진은 병원과 보호시설에서 2,000명 이상을 검진했다. 사람들은 콜레라가 쥐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발병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집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였다. 에비슨 의사와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커다란 포고문을 만들었다.

“호열랄병은 귀신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호열랄병은 미균이라고 부르는 아주 작은 벌레가 일으킨다. 이 작은 벌레가 위 속에 들어가면 급속히 번식하여 질병이 유발된다. 조심하면 호열랄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음식물을 완전히 익혀서 미균을 죽이고, 음식이 다시 오염되기 전에 먹는 것이다. 막 끓여낸 숭늉을 마셔야 한다. 마실 물은 끓여서 깨끗한 병에 보관하라. 부지불식 간에 병균과 접촉하게 되니 손과 입을 철저히 씻어라. 이상을 주의하면 호열랄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1]

도시 성문에는 기독교 병원으로 가라는 방이 붙었다. 콜레라가 잠잠해지자 정부는 선교회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선교사의 의료 사역과 세균에 대한 강조 덕분에 콜레라 환자들이 도움을 받았고, 동시에 질병에 관한 애니미즘적인 믿음을 깨뜨리는 홍보 활동이 힘을 얻었다. 고종은 에비슨 의사 등 선교사들에게 포상하며 치하했다.

선교사들이 촬영한 콜레라 고양이.

 

1902년 8-9월에 한국에 콜레라가 유행했는데, 서울에서만 9월에 매일 50-250명이 사망했다. 원산 경찰서는 1902년 9월에 61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정부 의학교는 1902년 『호열랄병예방주의서』를 발행했으나 호열랄을 ‘호열자’로 읽도록 했을 뿐이었다. 구제역 때문에 서울에는 땔감과 쌀을 운반할 소가 없었다. 1899-1902년에는 3년 간 천연두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의학교 편, 『호열랄병예방주의서』, 1902년 6월.

 

1901-02년 중부지방에 비가 오지 않아 대기근이 덮쳤다. 윤치호는 1902년 11월 22일 자 일기에 “모든 한국인들이 이 해가 현 왕조의 마지막 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사람들은 하와이 이민 붐에 너도나도 떠나거나 화전민이 되거나 각설이가 되었다. 가뭄과 역병으로 대한제국은 파산했다. 일진회와 천도교 등 여러 집단이 종말론적 대안을 제시했으나, 한국은 안으로부터 무너졌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역병은 더 기승을 부렸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할 힘이 없었다.

이때 교회에서는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기근과 전염병으로 무너지는 사회에서, 개신교는 한국의 신종교 운동으로 대안적 공동체를 제시했다. 진공 상태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난 게 아니다. 시대 상황을 알면 1903-07년 대부흥 운동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1910-11년 만주 폐렴 흑사병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폐렴과 비슷한 신종 폐렴이 만주에서 발생하여 수만 명이 사망했다. 케임브리지 출신 중국인 의학자 오연덕(伍連㯖, Wu, Liande 1879~1960)은 이 전염병이 기침, 재채기, 대화할 때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병원체로 감염되는 폐 페스트이며, 그 매개체도 쥐나 쥐벼룩이 아니라, 산속 바위틈이나 평지에 굴을 파고 사는 마르모트라고 주장했다. 마르모트 가죽이 피혁 시장에서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마르모트 사냥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악성 페스트가 사냥꾼을 통해 전파되었다.

1910년 10월에 발생해 11월에 하얼빈으로 번진 후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만주에서 전염병은 늘 겨울에 발생했는데, 이는 추운 지방이라 겨울에는 실내 생활만 하면서 비위생적인 좁은 공간에 모여 지냈기 때문이었다. 간도 지역에는 한국인도 많아 한국인 피해도 적지 않았다. 만리장성을 넘느냐, 압록강을 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다행히 북경이나 서울로 확산되지 않았다. 압록강-두만강 경계를 철저히 방어한 결과 페스트가 한반도로 넘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염병 유행은 언제나 정치적 결과를 초래한다.

이 페스트 유행으로 위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1910년만 해도 세균의 전염이라는 세균론(germ theory)은 만주인들에게 인식·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만주 정부는 환자의 기침을 통한 공기 전파와 면역이 약한 노약자들이 걸리는 것으로 소책자를 발행하고, 침술과 웅담과 어린아이의 소변을 먹고 면역력을 강화하면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마르모트 유통을 금하고 감염자 시신을 장례 없이 바로 소각하면서 페스트가 잡혀나갔다.

일본은 이 일을 그들의 위생 정치의 승리로 선전하면서 조선 식민지 통치를 더욱 정당화하였다. 한국인은 이 선전에 대항할 다른 담화를 만들 수 없었다. 일본 정부와 경찰의 한국인 통제, 감시, 격리가 일반화되고 수용되었다. 일제의 경찰 정치, 무단 정치가 자리 잡았다.

 

무오년(1918) 독감으로 14만 명 사망

1918년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유행 때, 한국에서도 “무오 독감”으로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만 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 2,113명(44%)이 감염되어 13만 9,128명(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 인구의 0.83%)이 희생되었다.

이 ‘지독한 돌림 감기’ 때문에 간호원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간호원이 동이 났고, 그들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당시 면허받은 졸업 간호사는 전국에 90명 정도로 대개 일본인이었고, 일반 조선인 간호원은 대개 보조 간호원으로 300명이 더 있었다. 일본인이나 부자들만 비싸고 좋은 병실에서 간호를 받고, 가난한 한국인은 근대 의료와 간호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920-21년 만주 하얼빈에서 페스트가 재발하여 3,125명이 사망했고 그해 만주에서 9,300명이 죽었다. 삼일운동 후 핍박을 받은 만주 한인들은 전염병 유행으로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고, 독립운동도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이른바 ‘스페인 독감’ 당시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전염병과 보건 치유 신학

자연재해(지진이나 태풍 등)가 발생하면 하늘의 뜻이라거나, 불의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는 재난 심판론을 강력하게 부정한다.[2] 이웃의 재난은 우리의 회개와 도덕적 책임(사랑과 자선의 실천)을 촉구하는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는 자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늘 우리 곁에 있는 우리의 이웃이요 친구들이다. 최근 우한에서 귀국한 동포들을 아산과 진천에서 환영한 배후에는 목회자들의 호소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과 혁명으로 1억 가까운 생명을 죽인 광기의 20세기가 지나자, 환경오염과 과잉 욕망의 소비로 인해 전염병의 세기가 다가왔다. 20세기의 인재가 전쟁과 혁명이었다면, 21세기에는 또 다른 인재인 환경오염과 전염병이 생겼다. 앞으로 전염병이 전 지구적으로 유행하는 팬데믹(pandemic)이 계속 발생할 것이다. 교회는 공중보건학과 함께 가는 공적 치유 신학을 정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 겨울, 미국에서 독감이 유행하여 8,000명 이상이 죽었다. 이렇게 평년보다 많은 이들이 독감으로 사망하는 데는 경제 침체로 인해 노숙자와 가난한 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는 한국에서도 독감, 조류독감, 신종폐렴과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교회 강단에서 “모이기를 힘써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공중 보건과 위생 체계 확립이나 전염병 전문 의사와 간호사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전염병 유행 때 봉사할 수 있는 봉사자 훈련,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노약자와 가난한 자의 복지를 위해서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교회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1] Allen D. Clark, Avison of Korea: The Life of Oliver R. Avison, M. D.(Seoul: Yonsei University Press, 1979), 106.

[2] 누가복음 13:4-5,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는 사고로 18명이 죽은 사건을 언급하시며 예수님은 그들의 죄가 더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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