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위대한 인물의 신기한 탄생 설화처럼, 이 별 이야기 역시 예수의 탄생을 부각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보고 그 사실 여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복음서 중에서도 유독 마태복음에만 동방박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야기 속 사실에 대해 의심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믿고자 하는 신자들은 동방박사와 그 별에 대해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동방박사는 필자의 어린 시절 교회의 성탄절 연극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인물이었다. 연극을 할 때마다 동방박사라는 명칭부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했던 별까지 온통 신비스럽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동방박사나 그 별을 그리 신비스럽게 보지 않는 것 같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신자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현대인들은 동방박사의 별 이야기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고대의 위대한 인물의 신기한 탄생 설화처럼, 이 별 이야기 역시 예수의 탄생을 부각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보고 그 사실 여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복음서 중에서도 유독 마태복음에만 동방박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야기 속 사실에 대해 의심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믿고자 하는 신자들은 동방박사와 그 별에 대해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뉴욕 펠햄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동방박사의 경배”. (출처: Wikipedia 갈무리)

 

동방박사는 ‘동쪽에서 온 박사’라는 말인데 어디에서 왔는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을 인도했다는 별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확정적인 것은 없다. 동방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아라비아반도 등 주로 현재의 중동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박사(들)는 그리스어 마고스(μάγος)의 복수 마고이(μάγοι, 영어 magi)로 점성술사, 혹은 왕이나 제사장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하늘의 별을 잘 관찰한 것으로 보아 천문을 연구하여 땅의 현상을 예측하는 점성술사라고 보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점성술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 일을 기록했으므로 성경이 별로 점을 치는 점성술을 인정하는 것인가? 혹은 동방박사를 점성술사라고 볼 때 점치는 일을 금한 성경의 다른 가르침과 모순이 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탄생했던 고대의 과학의 모습과 당시 점성술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년 전 필자는 종교개혁 시대의 과학자 케플러(1571-1639)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1] 케플러가 살던 15, 16세기까지도 아직 점성술(astrology)과 천문학(astronomy)이 분리되지 않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때에는 하늘의 천체의 변화가 기후나 질병 등 지상의 각종 현상과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고, 그 관계를 연구하는 점성술이 과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천문학은 오히려 점성술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점성술사라 부르지 않고 천문학자 혹은 수학자라 불렀다. 그러므로 그들을 천문학자로 부르든 수학자로 부르든 점성술사로 부르든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천체의 현상을 관찰하여 달력을 만들거나 기상을 예측하고, 씨 뿌릴 시기와 추수할 시기, 농사의 길흉, 전쟁, 전염병의 위험 등에 대해 통치자에게 조언하는 일을 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시대나 예수님 시대의 점성술을 오늘날의 의미처럼 별로 점이나 치는 미신으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종교개혁의 신앙을 가졌던 케플러도, 일생 하늘의 천체를 연구하면서 천체가 지상의 현상과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성술을 믿고 살았다. 하지만 케플러는 별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지는 않았고,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 안에 있다고 믿으며 일생을 살았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시각으로 보면 미신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누구라도 자기 시대의 미신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별로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을 강하게 비판했던 칼빈조차도, 별이 기후, 농사, 인간의 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당시의 학문으로서의 점성술은 받아들이고 살았다.[2] 오늘날의 과학적 시각으로 보면 다분히 잘못된 생각이지만 말이다.

종교개혁 시대나 그보다 1,500년이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동방박사가 활동하던 시대는 오늘날처럼 정형화한 자연법칙이나 과학 법칙이라는 개념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이다. 그래서 그때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되 오늘날 과학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파악하려고 했다. 중세나 고대 사람들은 하늘이나 자연 세계를 마치 생명체처럼, 우주 영혼, 세계 영혼, 대지 영혼, 생령과 같은 식으로 이해했다. 물질들 사이의 관계도 우리가 아는 중력과 같은 기계적 힘의 작용이 아닌, 유기체 간의 관계인 공감(sympathy)과 반감으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과 하늘을 소우주와 대우주의 관계로 이해했다. 그래서 당시의 과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자연철학, 즉 형이상학이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 역시 우리가 아는 과학이라기보다 자연철학에 가까웠다. 그리고 자연철학인 점성술이나 연금술로써 새로운 지혜와 지식을 찾으려 하였다. 점성술은 천상의 지혜를, 연금술은 천상의 제5원소를 찾으려 한 시도였다. 예수님 시대의 고대 과학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책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90-168년경)가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져 온 천동설을 정리한 『알마게스트』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만든 점성술을 정리한 『테트라비블로스』가 있다. 하늘의 천체를 잘 관찰하고 그렇게 관찰한 천체로부터 땅과 기상 현상,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예측하는가를 설명하는 책들이다. 점성술이나 연금술에서 천문학과 물리, 그리고 화학이라는 과학이 분리되어 나와 자리를 잡은 것은 종교개혁 이후의 일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적 체계를 묘사한 삽화. 포르투갈의 우주지학자이며 지도 제작자인 바르톨로뮤 벨로의 작품.(소장: 프랑스 국립도서관)

 

더 거슬러 올라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보면, 요셉이 활동하고 또 모세가 교육받고 자랐던 이집트 궁궐에도 점성술이나 연금술과 비슷한 당시의 학문으로 지혜를 탐구하는 사람들(박사 혹은 현인, 점술가, 술객, 박수, 마술사 등)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궁중에서 활동했던 다니엘은 그런 일을 위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일생 그 일을 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3] 물론 천상의 지혜를 얻으려는 점성술의 천문 연구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에서는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빠지기 쉽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운명을 알아내겠다고 창조물인 자연이나 천체에 의존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금하며, 그런 일을 행하는 점술가나 술객을 우상숭배자로 보아 강하게 반대한다. 그렇지만 동방박사들이 그들의 천문 지식으로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데서 보듯이 당시의 학문인 점성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날의 과학적 시각으로 성경의 이런 기사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동방박사를 그 시대를 넘어선 사람들로 과도하게 미화할 이유도 없지만, 반대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 별로 점이나 치는 점성술사로 쉽게 단정하는 것도 잘못이다. 신기하게도 성경은 점성술과 같은 학문이 주류를 이룬 시대에 쓰인 책이지만,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학문의 영향으로 인한 미신적인 생각이 들어 있지는 않다.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에 대한 견해도 여러 가지다. 실제 그런 별이 나타났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 별이 아닌 어떤 특별한 물리적 현상, 심지어 심리적 현상이라는 주장, 신성과 같은 특별한 별이 나타났거나 800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목성과 토성이 일직선상에서 함께 빛을 발하는 현상이라는 주장 등 다양하다. 이 마지막 주장은 케플러가 처음 말한 것으로 그 연도를 계산으로 밝히면서 예수님이 AD 1년이 아닌 BC 4년에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런 주장들 중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과학 시대는 신자라도 과학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주장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반드시 옳은 태도일까? 아니다. 과학적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면 성경을 믿는 일에 과학이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태도다. 이럴 경우 고대나 중세인들이 받아들인 점성술을 우상숭배나 미신이라 비판하는 우리가 오늘날의 과학을 성경보다 더 신뢰함으로써 그것을 우리의 우상과 미신으로 삼는 셈이 된다.

동방박사 이야기로 고대나 중세의 점성술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별로 점을 치는 점성술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일이고 잘못된 일이다. 그렇지만 점성술이 고대나 중세의 상대적 진리이었듯이 과학 역시 우리 시대의 상대적 진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볼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다. 이적을 이적으로 믿지 못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를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신자인 우리는 동방박사와 그들을 인도했던 별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하신 일 그대로를 믿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의 능력으로는 다 헤아릴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크고 크심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며, 그것이 곧 성경을 어느 시대나 변함없는 진리로 받는 일이다.

 

영화 ‘위대한 탄생(The Nativity Story, 2006)’의 한 장면. 동방박사 세 명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있다.

 


[1] 성영은, 『케플러,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히다』(성약, 2011).

[2] 존 칼빈, 『칼빈의 점성술에 대한 경고』, 김동현 옮김(솔로몬 말씀사, 2002).

[3]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다니엘)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단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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